성주읍성

-조선시대 때 성주는 거대도시였으며, 영남에서 규모가 제일 큰 독용산성을 품고 있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서쪽 지역으로 진격하는 전략적 요충지, 무계, 안언역, 성주목을 방어하라!

-성주목을 둘러싼 피비린내나는 전투, 성주는 제말·제홍록의 영웅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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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읍성 주변 지역

현재 성주는 군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아주 큰 행정도시였다. 그 당시 성주는 조선시대 전국에 있었던 20개의 목(조선시대 행정체계: 목, 부(대도호부)-부(도호부)-군-현) 가운데 하나였다. '부'의 명칭을 가진 경주, 전주, 개성, 평양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요즘의 '특별시와 광역시'에 해당되고, 그 나머지 '부'의 명칭을 가진 지방과 '목'의 명칭을 가진 지방 행정조직은 요즘의 '시'에 해당된다. '특별시와 광역시'에 해당되는 곳을 제외하고는 '부'보다는 '목'의 명칭을 가진 지방조직이 행정력을 견인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현재의 성주군청이 있는 자리와 그 일대, 평야지대에서 약간 우뚝 솟아 있는 성주여고 자리, 천연기념물 제403호로 지정된 성밖 숲, 그리고 성주 시외버스터미널 지역은 모두 조선 시대 때 성주읍성이 위치해 있던 곳이다. 성주군청은 이 일대에 표지석을 세운 적이 있다. 성주군청 관계자는 '현재 지표조사 발굴 중이며, 성주읍성 지구가 토성과 석성이 함께 잔존해 있기 때문에 좀 더 세밀한 지표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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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여중·여고에서 바라본 성주 주변 지역

성주여중과 성주여고는 같은 공간에 있다. 정원 옆의 건물이 성주여중이고, 정면의 4층 건물이 성주여고이다. 성주여고생들에게 사전 얘기를 하고 양해를 구한 다음, 성주여중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주위 전경을 촬영했다. 이름을 들었지만 잊어 버려 미안함을 느낀다.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한다.

성주여중과 성주여고가 위치한 이 자리는 성주읍성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 중에서 제일 높은 곳이기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 지휘소와 망대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임진왜란 당시 성주목사였던 제말 장군이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일본군을 맞아 치열하게 전투하다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조선정부는 그의 공을 기려 성주초등학교 자리에 비석을 세웠는데, 현재는 성주여고 정문 맞은 편으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주여중·고를 오르면서 길 옆에 잔존해 있는 석성과 토성의 성벽을 보면서 무언지 모를 벅찬 감정이 몰려왔다. 토성의 흔적은 나로 하여금 5~6세기 성산가야로 향하는 단초가 되었다. 6개 가야국 중의 하나인 성산가야. 성산가야국을 지배했던 호족들의 무덤은 현재 성주읍 성산리에 위치해 있다. 석성의 흔적은 처참했던 7년 전쟁(1592~98,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참상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그 당시의 성주목 백성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오는 듯 했다. 또한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언저리에는 고려개국공신이자 성산이씨의 시조인 이능일의 재실이 있다.

수천년을 이어온 선조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이곳, 선조들의 맑고 웅장한 영혼이 깃들여 있는 이곳, 성주여중·고를 졸업한 이들은 참으로 복이 많은 것 같다. 선조들의 웅대한 포부를 가슴에 안은 후손들이 탄생되기를 기대해 본다.

성주여중·고의 운동장을 들어서는 순간, 운동장과 정원이 함께 어울어진 모습에 또 한번 감탄했다. 정원에는 아담한 연못이 있었고, 벤취가 있었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노고가 대단했으리라!. 성주읍내를 사방으로 볼 수 있어 참으로 좋았다. 따뜻한 봄날에 무슨 노파심인지. 문득 겨울이 떠올랐다. 높지는 않지만 주위 지역과 비교해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니 겨울바람이 장난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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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읍내와 예전의 성주읍성의 지리적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사방을 둘러 보았다. 서쪽 방향에서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촬영했다.

①서북 방향(성밖 숲)

성주읍내를 휘돌아 나가는 이천(사진 속의 왼쪽)과 성주읍내를 연결해 주는 경산교(사진 속의 오른쪽)가 보인다. 강변 옆의 숲이 천연기념물 제403호 '성밖 숲'(왕버들 숲)이다. 탁 트인 공간에는 참외를 기르는 비닐하우스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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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북쪽 방향

북쪽 방향은 성주여고 건물로 인해 촬영할 수 없었다. 성주여고 건물 뒷편 정문으로 내려가는 길에 북쪽 방향을 향해 촬영한 것이다. 성산이씨 재실인 성산재星山齋가 보인다. 성산군星山君 이능일李能一은 고려 개국공신이며, 성산이씨星山李氏의 시조가 된다.

성산재星山齋

흰색 높은 건물이 성주군청이다. 멀리 능선이 길게 뻗어 있다. 월항면 방향이며, 뽀족한 산 좌측으로는 초전면이다. 뾰족한 산 좌측에 세종대왕자태실이 있으며, 우측 맨 가장자리 산 밑에는 한개마을이 있다. 뽀족한 산 너머에는 구미의 진산인 금오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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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첫 번째 건물이 성산재, 성산재 옆의 건물이 저존당, 담 안에 있는 건물이 경원사, 경원사로 들어가는 문은 여재문, 단소로 올라가는 문인 이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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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북동 방향

왼쪽 앞으로 보이는 산 아래는 성주읍 예산리이다. 성주향교가 있다. 오른쪽으로 청일가야아파트가 보이고 뒷산을 넘으면 한개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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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현수막 오른쪽에 비석이 있는데, 척화비이다. 또한 현수막과 건물 사이로 계단이 있다. 계단 옆에 성곽 유물과 관련된 돌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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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비는 흥선대원군의 작품이다. 이 비를 세울 당시 전국에 200여개를 세웠는데, 이곳에 있는 것은 그 중의 하나이다. 이 비는 원래 성주초등학교 부근에 있었는데, 공사 도중 발견되어 현재 이 위치로 옮겨지게 되었다.

1866년(고종 3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흥선대원군이 백성들에게 외세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해 1871년 4월을 기점으로 한성(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에 척화비를 세웠다. 1882년 임오군란 후 대원군이 청에 납치되자 전국에 있던 비석들은 모두 철거되어 땅 속에 묻혀 버렸다.

비석에는 희미한 글씨가 남아 있다. 위쪽 오른쪽에서 아래로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계오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佯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吾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서양 오랑케가 침범하니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말이다. 화친을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다. 우리의 만대 자손에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역사의 거울에서 배운다고 했다. 문과 무를 겸비해야 됨을 조선의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 조선의 500년은 문을 숭상했고 무를 배척했다. 이 결과가 7년 전쟁(임진왜란·정유재란)을 낳았고, 30여년이 흐른 후 병자호란을 잉태시겼다. 그 후 다시 200여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외세에 굴복하게 되었고, 급기야 한일합방이라는 국치를 맞게 되었다.

세계의 역사, 중국의 역사, 일본의 역사를 시간적인 측면에서 비교할 때 조선 500년의 역사는 참으로 경이롭다고 할 수 있다. 그 어느 민족이나 국가도 한 왕조를 500여년 동안 지속시킨 나라가 드물기 때문이다. 딱히 무어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떤 요인으로 인해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된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어느 왕조나 어떤 조직이나 100여년이 지속되기가 어렵다. 안일함에 빠지고 자가당착에 매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는 자기 변화가 요구되고, 자기 혁신과 자기 파괴가 필요한 것이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새로운 인물이 들어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어야 하고, 기존의 세력들이 신진세력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미덕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권력은 속성상 나누어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부모 형제도 살해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수 많은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

혁신과 자기 파괴가 없는 상태로 역사는 흘러간다. 그것이 또한 사실이며, 진실이다. 어느 시점에 누군가가 나타나 그 시대를 마감시킨다. 그렇게 역사는 반복되어 간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흥선대원군의 척화비 내용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전형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권력에 몰두하는 동안 주변 세력들이 힘을 키워가고 있다는 것 조차 알지 못했다. 권력에 대한 탐욕이 극에 달했을 때, 주변 세력들은 앞다투어 흥선대원군의 목에 칼날을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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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동남 방향

아래 두 장의 사진과 ⑤번의 사진 1장은 연속적으로 찍은 파노라마이다. 아래 사진 오른쪽 뒤에 보이는 산에 성산가야 고분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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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남서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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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기념물 제403호 성밖 숲(왕버들 숲)

왕버들 숲은 경산지京山誌 및 성산지星山誌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중기 때 성주 읍성邑城 서문 밖의 어린 아이들이 이유없이 죽자 풍수지리설을 따라서 서문 밖에 만들어진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현재 성밖 숲에는 나이가 300∼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왕버들 59그루가 자라고 있다. 조선후기 때 지도인 해동지도에는 이곳 성밖 숲 일원이 관왕묘關王廟와 교장敎場이 존재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대 500년 수령을 가지고 있으니 관왕묘가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에 왕버들 숲이 있었던 것이다.

①경산교에서 바라본 성밖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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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성밖 숲에서 바라본 경산교

경산교를 지나면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성밖 숲으로 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군청 방향이다. 삼거리에서 군청으로 가는 길은 서문고개라 하는데, 고개마루에 성주여고 정문이 있으며, 맞은 편에 쌍충사적비가 있다. 성주참외축제를 맞아 해병전우회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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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성밖 숲의 다양한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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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읍성과 관련된 역사적 흔적들

①고지도로 본 성주읍성

고지도인 '해동지도'에 나타난 성주목이다. '광여도'에서는 안언역이 두의곡방에 속해 있었다. 현풍에서 거창, 합천, 지례, 금산 방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성주목을 지나야 하는데, 그 길목이 무계진과 안언역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 지역을 사수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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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읍기도는 서울대학교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건물마다 명칭이 모두 있으나, 글씨가 작고, 확대해도 글자가 깨져서 더 이상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위에서부터 사우, 내아, 사시헌, 내동헌, 외동헌(청민당), 내삼문, 연지, 독산(죄수를 유배시켜 안치시키던 곳), 객사, 동문, 문이다. 90도 뉘어서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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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목)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알 수 있다. 1300년대까지는 현재의 충청도 옥천까지 포함되었고, 1600년대까지 팔거현(현재의 칠곡), 대구현, 고령군까지 직할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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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성주문화원

② 성주읍성의 성곽 흔적

성주여고 정문이다. 언덕 정상에 성주여고가 있다. 좌측 문 옆에 돌로 쌓은 성곽 형태가 보이고, 뒤쪽에 흙으로 쌓은 성의 흔적이 보인다. 토성 옆으로 빨간 벽돌집이 있는데, 이 역시 성벽으로 추정되는 성곽위에 그대로 건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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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쌍충사적비와 서문터 표지석

임진왜란(7년전쟁, 1592~98)은 조선 500년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조선 건국 200년 동안 내적으로 평화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정부는 물론 백성들 역시 국방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다. 일본은 이 시기 100여년에 걸친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토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에 의해 통일을 맞이하였다. 히데요시는 천하 지배를 선언하고 명을 공격하기 위해 조선을 침략했다. 그 이후 조선은 7년 동안 일본과의 전쟁에 매달려야 했고, 전쟁이 끝난 이후 조선은 깡그리 황폐화되기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 성주는 제말諸沫(1543~1592)이 의병을 모아 일본군의 진격을 저지시키고 있었다. 제말은 임진왜란 초기에 의병을 모아 경남 웅천(현재의 진해 지역), 김해, 의령(의병장 곽재우가 방어하던 곳) 등지로 출전해 많은 공을 세웠다. 조선 정부와 선조는 제말의 공을 높이 치하하여 성주 목사로 임명하였다. 성주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군의 공격을 받았다. 제말은 수백명의 군사와 함께 끝까지 항전했지만,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결국 장렬히 전사하였다. 제말은 신장이 아주 컸으며, 덩치에 비해 매우 날렵했다고 한다. 일본군 역시 그의 날렵한 모습을 보고 비장군飛將軍이라 부르며, 그를 보면 혼비백산 도망하였다고 전한다.

제홍록諸弘錄(1558~1597)은 제말의 조카이다. 작은 아버지(숙부)인 제말을 따라 의병활동을 하면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제말이 전사한 이후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에게 포위된 진주성을 지원하러 가다가 도중에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제홍록은 효심이 지극하여 전쟁 와중에도 항상 어머니를 모시고 다녔으며, 전투 중에는 어머니를 산중에 숨겨두고 전투에 임했다고 한다.

7년 전쟁이 끝나고 180여년이 흐른 1777년(정조 연간)에 조선정부는 제말에게 병조판서(현 국방부 장관)를 추증(사후에 공을 기려 벼슬을 내리는 것)'하고 '충장'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1792년(정조 16년)에 제말·제홍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조선정부는 비를 세우도록 했다. 비문은 이조판서(현 행정안전부 장관겸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에 해당)가 지었으며, 글씨는 이병모가 썼다. 또한 비에 남아 있는 전서篆書는 그 당시 성주목사였던 조윤형이 썼다. 1812년(순조 12년)에 충장이라는 시호를 충의忠毅라는 시호로 바꾸었다. 제홍록 역시 정조 연간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이 비석은 원래 성주초등학교(군청에서 150m 거리, 성밖 왕버들 숲에서 550m 거리)에 있었으나, 운동장을 넓히면서 1940년경 현재의 이 자리로 이전하였다 한다. 이들의 사적비는 이곳 외에도 경남 진주성에 하나 더 있으며, 무덤은 경남 함안군 칠원면에 소재해 있다.

사진 속의 왼쪽에는 표지석이 하나 있는데, 성주읍성의 서문터 표지석이다. 성주여고 정문 일대가 성주읍성의 서문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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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목사 조윤형이 쓴 전서篆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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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이다. 오른쪽 위부터 왼쪽으로 '증병조판서행성주목사충장제공증병조참판선무제의사숙질쌍충사적비명'이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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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읍성의 서문 터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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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성산관

성주여고 정문과 쌍충사적비에서 군청 방향으로 30m 내려가다 왼쪽으로 보면 군청이 보이고, 군청 뒷편에 성주목의 관아 건물 중의 하나인 성산관이 보인다. 성산관은 현재 성주목의 관아 건물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성주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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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군청 뒷편에서 촬영한 성산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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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관의 정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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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관의 뒤에서 촬영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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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촬영한 성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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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관의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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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김창숙 기념관

성산관 건물 아래에는 심산 김창숙 기념관이 있다. 심산 김창숙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성균관대학교 설립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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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김창숙 선생 사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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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내 동헌 터 표지석

군청 정문 왼쪽에 있다. 내 동헌은 목사의 집무공간이지만 실재 업무를 행하던 곳이 아니라 일반 가옥에서의 사랑채와 같은 기능을 하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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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내 동헌 터 표지석

군청 삼거리에 있는 성주 우체국 맞은 편에 있다. 외 동헌은 목사가 집무공간으로서 모든 일상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이루어지던 곳으로 청민당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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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작청 터 표지석

성주 우체국이다. 사진 오른쪽에 표지석이 보인다. 작청 터 표지석이다. 조선시대에는 행정 부서로서 중앙에는 '조'를, 지방에서는 '방'을 사용했다. 6개의 부서가 있었는데, 이·호·예·병·형·공이 그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행정 부서 중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부서는 바로 인사권을 다루는 부서이다. 6개 부서 중에서 인사권을 담당한 곳이 이방이다. 이 이방의 최고 책임자가 업무를 보던 장소인데, 주로 백성들의 민원을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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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N 국방시민연대 전쟁사위원회 위원장 권순삼 kwonsa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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