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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Apr
문경 고모산성(姑母山城)
작성자:
한국의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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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행장과 이여송이 극찬한 고모산성
-전략적 요충지를 방어하지 못한 조선군은 탄금대에서 피눈물을 뿌려야 했다!
■ 문경 고모산성과 관련된 사건 및 인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7년 전쟁, 1592~1598) 당시, 문경의 고모산성과 관련하여 역사적 깊이를 더하고자 할 때는 문경 현감 신길원, 신립 장군의 탄금대 전투, 그리고 조령(문경새재)에 대해 알아 두는 것이 좋다.
■ 위치 및 지형도
▼ 위치도
고모산성(姑母山城)은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의 고모산(姑母山)(231m)에 있는 포곡식 산성이다. 2세기경에 처음 축조한 것으로 짐작되며, 이후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을 반복하였다. 현재의 문경시에는 문경읍, 가은읍, 점촌이라는 시내가 존재하는데,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점촌은 상주의 함창(현)과 문경(현), 그리고 예천(군) 소속인 용궁(현)의 일부였다. '점촌'이라는 지명이 유명해 진 것은 탄광지대 때문이다. 석탄 에너지로 경제개발을 하던 70~80년대에 전국의 어느 도시보다 빠른 성장을 구가하였다. 석탄 에너지에서 석유와 가스 에너지로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점촌은 쇠락해져 갔다. 국민들은 문경 하면 문경(현) 지역인 문경읍내를 상상하게 되는데, 문경시에서 가장 큰 도시는 점촌이다. 모든 상권이 점촌에 있고, 문경시청 역시 점촌에 위치해 있다.
당교는 문경(점촌 시외버스터미널)과 함창 사이 경계에 있는 다리이다. 통일신라를 건국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던 김유신이 당나라 소정방군을 격퇴시켰던 설이 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1592년 7년 전쟁이 시작되고, 동년 9~10월부터 경상좌도에서 의병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그때 김해를 중심으로 '안동열읍향병(안동부 여러 지역 의병 결합체)'이 조직되어 이곳 당교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다. 당교에 대한 설명은 마지막부분에서 다루고자 한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1,600m로 동벽 345m, 북벽 300m, 서벽 375m, 남벽 280m의 규모이며, 높이 2m~5m, 너비 4m~7m이다. 성벽은 북쪽 정상부가 있는 봉우리(231m)와 남쪽 봉우리(193m)의 능선을 연결하여 쌓았다.
▼ 지형도
동쪽에는 오정산(812m)이, 서쪽에는 어룡산(魚龍山)(617m)이 있으며, 이 산 사이에서 가은천과 조령천이 만나 영강을 이룬다. 이 영강은 낙동강 최상류에 해당된다. 지형에 따라 서쪽은 절벽을 그대로 이용하여 바깥쪽만 쌓는 편축식(片築式)으로, 나머지 삼면은 성벽 안팎을 쌓는 협축식(夾築式)으로 성벽을 쌓았다. 서쪽은 봉우리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계곡의 하단부를 가로질러 연결하고 있다. 계곡부를 포함한 포곡식 형태이며, 지형적으로 배후에 해당하는 북쪽이 높고 남쪽이 평탄대지를 이루는 산성이다. 평면모습은 북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평행사변형 모습으로 남북방향을 장축으로 하고 있다.
산성의 동쪽으로 옛길인 영남대로가 지나가고 있는데 영강변을 따라 단애면 중턱을 깎아 조성한 관갑천잔도(串岬遷棧道 일명 토끼비리)가 석현성 진남루 관문과 돌고갯길을 따라 북쪽 충주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호계면에 있는 나루터가 조선시대 낙동강 수운의 종착지이다.
▼ 고모산성 안내도
옛 성벽은 현재 대부분 허물어지고 없다. 그러나 남문지와 북문지(南北門址), 동쪽 성벽의 일부분이 남아 있다. 축조 재료는 전체 구간을 석축하였으며, 대부분의 성벽에서 내외겹축의 성벽이 확인되고 있으나, 일부 구간에서는 지표상으로 내측 성벽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이곳 또한 지하에 내측 성벽이 매몰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 아래로는 신라 고분군이 남동사면 일대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성내 시설물은 동서남북의 4개소에 문터가 남아 있으며, 남동쪽과 북동쪽에 곡성을 축조한 것이 확인된다. 또한 북동쪽 곡성은 후대 성벽을 개축하면서 치성으로 고쳐 쌓은 흔적이 확인된다. 지표상으로 1개의 수구가 확인되었으나, 2005년 발굴조사를 통하여 수구가 2개임이 밝혀졌다. 수구지 내측은 넓은 삼각형의 평탄지로 이곳에 연못과 같은 저수시설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성내에서 건물지가 발견되었고,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이 많이 흩어져 있다. 또 중원문화재연구원의 조사보고에 따르면 서문지 부근 지하에는 약 1,500여년 전의 지하 요새로 짐작되는 목조 건축물과 목조 유물이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 목조 건축물은 남북 길이 12.3m, 동서 길이 6.6m ~ 6.9m, 높이 4.5m 규모의 3층 구조(상층 2.1m, 중층 1m, 하층 1.4m)로, 창고나 지하 요새, 저수지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아래의 사진에서 ①은 동문지, ②는 남문지, ③은 서문지, ④는 북문지이다. ⑤는 조선 중기에 쌓은 석현성 진남루이고, ⑧은 토끼벼루이다. 그리고 ⑪은 고분군이다.
■ 주변 전경
① 북쪽 방향(문경현, 충주 방향)
멀리 주흘산이 보인다. 좌측으로 가면 조령이요, 우측으로 가면 계립령이다.
② 남쪽 방향(점촌, 상주 방향)
가까이에 있는 산 능선은 오정산 능선이요, 멀리 보이는 산 능선은 어룡산 능선이다. 두 산의 능선이 중첩되어 있다. 영강이 흘러간다.
임진왜란 1선봉대인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와 명군 장수 이여송(군 작전 사령관)이 이 고모산성 아래를 지나면서 극찬을 했던 곳이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상주에서 이일 사령관을 격퇴하고, 함창을 거쳐 당교에 이르렀다. 고모산성이 전략적 요충지임을 알고 2~3번이나 정찰대를 보냈다. 1593년 일본군이 평양에서 한성으로, 다시 한성에서 부산으로 퇴각할 때 이여송이 이곳을 지나면서 이 고모산성에서 일본군을 방어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했다 한다. 이 성의 전략적 요충지는 유성룡의 '징비록'에도 실려 있다.
조선 후기 이인좌의 난 때 신필정(申弼貞)이 정희량(鄭希亮)을 막았고, 1895년(고종 32)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가 주동이 되어 명성왕후를 시해하고 일본세력 강화를 획책한 을미사변 때는 이강년이 의병을 일으켜 격전을 치른 곳이다. 또 1950년 한국동란 때에도 중요한 방어 거점이었다.
③ 서쪽 방향(가은, 속리산, 견훤산성 방향)
④ 동쪽 방향(오정산 능선 방향)
■ 성곽 전경
▼ 전체 전경
① 북쪽 끝에서 남쪽 방향으로의 동쪽 사면을 찍은 모습
② 남쪽 끝 토끼벼루 자리에서 북쪽 방향(고모산성 남문지)으로 찍은 모습
▼ 남문지
① 남문지(쑥 들어간 부분이 남문이다)
진남루에서 고모산성으로 올라오는 계단이 보이고, 어룡산도 보인다.
② 남문지의 치에서 남쪽 방향으로 바라본 전경
③ 남문지에서 서쪽 방향(멀리 보이는 산이 어룡산이다)
④ 남문지에서 북서쪽 방향(새로운 것과 옛 것이 상존해 있다)
⑤ 남문지 아래의 석현성과 진남루
▼ 서문지
① 서문지 바로 옆의 성곽
지하목조 구조물이 발견되어 고모산성 발굴이 한창일 때 찾았다. 이 때 찍은 사진들이 있는데,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수구 2개가 보인다. 수구 밑으로 된 성벽은 오랜 세월 동안 땅 속에 묻혀 있었다.
② 성벽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바라본 수구
▼ 북문지
① 북문지 성곽 모습
서문에서 북문, 동문까지는 보수하지 말고 그대로 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성 안쪽의 산책로를 정비하더라도 가까이만 가지 않으면 천년 정도는 이 상태로 갈 것 같다. 문화재라는 것은 보수하지 않고 놔 두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이쪽으로는 절벽 지역이어서 사람들이 오르내리지 못한다.
▼ 동문지
① 동문지 성곽 모습(동문에서 북문으로 찍은 전경이다)
■ 당교
당교는 현재 상주시 함창읍 윤직리와 문경시 점촌을 가르는 경계이며, 예전에는 함창현과 문경현을 가르는 경계였다.
당교는 신라통일전쟁과정에서 신라의 김유신과 당나라의 소정방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더 유명하다. 이곳에서 소정방이 전사했다고 전한다.
1592년 임지왜란 당시 1군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이 북진할 때 이곳에서 몇일 주둔하였으며, 그 이후 제5군 장종아부원친長宗我部元親(조소카베 모토치카)이 이 지역을 담당하였다. 처음 이곳은 안동 향병장(군대 표시를 '안동열읍향병安東列邑鄕兵' 이라 했음, 안동부 권역내에 있는 많은 고을의 백성들이 조직화되었다는 의미) 김해가 공방전을 벌이기도 했으며, 영천과 경주지역이 탈환된 뒤에는 영천성 탈환을 이끌었던 권응수가 참전하기도 하였다. 1593년 일본군이 한성을 버리고 퇴각할 때까지 이곳은 일본군의 보급품이 철저히 차단된 곳이기도 하다.
① 북쪽(점촌)에서 남쪽(함창)으로 바라본 전경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 신호등이 보인다. 이곳이 당교이다. 앞에 보이는 다리 밑으로 '경북선'이라 불리는 철로가 있다. 신호등을 사이에 두고 산이 절개되었다.
당교가 있는 곳은 함창읍 윤직리이며, 윤직리 아래에 적통리가 있는데, 이곳에 예전 적통역이 있었다. 문경현에는 유곡역(찰방)이 있었으며, 함창현의 적통역을 관할하였다. 적통리에는 현재 지명이 '구역터'라고 되어 있는데, 이곳이 예전 적통역이었다. 적통역에서 서쪽으로 바라보면 낙동강이 보이며, 건너편이 예전 용궁현 하풍나루이다. 하풍나루는 제2군 가등청정이 건너온 곳이기도 하다.
② 당교의 우측 능선
얕은 산이 우측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③ 당교의 좌측 능선
당교의 우측 능선은 이곳에서 멈춘다. 사우나 건물이 보인다.
④ 당교의 우측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넓은 들
멀리 보이는 산 능선을 넘으면 바로 낙동강이다. 사진 우측 남쪽 지역에서 낙동강의 두 줄기가 서로 만난다. 하나는 문경에서 발원하여 이곳 점촌을 지나가는 '영강'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하여 안동, 예천을 거쳐 내려오는 낙동강 원류이다.
⑤ 위의 사진을 연결한 전경이다.
⑥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전경
당교사적지비가 보인다. 중간 멀리 아파트가 보이는데, 이 아파트 아래에 '문경시청'이 있다.
⑦ 당교사적지비
좌측 멀리 산이 보이는데, '돈달산'이다. 이 산 아래에 필자가 다닌 '초, 중, 고'가 있다.
⑧ 당교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점촌 시내 전경
멀리 '오정산' 능선이 보인다. 능선 좌측 밑에 '고모산성'이 위치해 있다.
DCN 국방시민연대 전쟁사위원회 위원장 권순삼 kwonsanha@naver.com
2012년 1월 7일.
남문에서 본 남쪽 방향의 석현성 너머 문경의 젓줄 영강.
외부에서 본 남문과 성벽. 2009년 방문 때 보수가 덜 되었는데, 보수가 완료되었다. 옛 것 그대로가 아니라 기계로 깎은 돌로 채워넣었다. 기존의 성돌은 다 어디로 갔는지. 있는 성돌은 그대로 올려도 되는데, 비용과 성축 기술로 인해 옛 성돌은 그대로 두고 쌓았다. 차라리 땅 속에 묻어 두는 것이 좋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