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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Oct
청주 상당산성(上黨山城)
작성자:
한국의 산하
IP ADRESS: *.33.105.108 조회 수: 10259
내륙의 전략적 요충지, 상당산성
- 삼국시대의 최전선 사령부의 포곡식 산성의 걸작품
- 장기전長期-戰에 대비한 대규모 병력의 주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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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지형 안내도
① 신라와 백제의 전선
청주의 상당산성上黨山城은 삼국시대 때 구축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제의 상당현上黨縣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하며, 통일신라시대 때 김유신의 셋째 아들 김서현이 서원술성(청주에 서원소경 설치)을 구축하였다는 것에서 유래하기도 한다. 어떤 설을 따르든 청주와 상주 두 지역은 백두 대간을 사이에 두고 최전선을 이루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신라의 입장에서는 상주에서 청주로 진격해 들어가야만 한강 유역을 점령할 수 있으며, 백제의 입장에서는 상주를 점령해야만 신라를 압박할 수 있다. 충북 보은에 있는 삼년산성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삼년산성
☞ 고모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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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청주목 내의 지형
청주읍성(목)은 우암산을 배산으로 하고 있으며, 무심천을 임수로 하고 있다. 우암산은 인경산 줄기의 서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무심천은 미호천과 합류한다. 청주는 백제시대 때 상당현으로 불리었다. 산성의 이름이 상당산성으로 된 것 역시 이와 같다. 상당산성의 구축 연대는 약간의 이설이 있다. 백제시대 때 토성으로 구축되었다는 설과 통일신라시대 때 청주에 서원소경을 설치할 때 김유신의 아들인 김서현(원정공)이 구축했다는 설이 있다. 상당산성에 올라서면 북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을 모두 굽어볼 수 있으며, 산성 내부는 주위의 산들로 둘러싸인 움푹 들어간 분지형태이다. 천혜의 요새라 할 만하다. 상당산성 남쪽에는 것대산 봉수대가 있다. 봉수란 밤에는 횃불을 올리고, 낮에는 연기를 올려 위급한 상황을 알리던 통신수단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평상시에는 1거, 적이 국경 근처에 나타나면 2거, 적이 국경 가까이 다가오면 3거, 적이 국경을 침범하면 4거, 적과 전투가 벌어지면 5거로 신호하라고 하였다. 어떤 지역이든 봉수대를 설치하려면 한 장소에 5개는 설치해야 올바른 복원이라 할 것이다. 것대산 봉수대는 조선시대 전국 봉수망 가운도 제2로선상에 있었으며, 청원군 문의면 소이산에서 신호를 받아 진천군 소을산으로 연락을 취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청주읍성 안내도
청주읍성에 대한 정보는 디지털청주문화대전 홈페이지를 참고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읍성의 유래, 규모, 지도 등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청주시는 현재 청주읍성의 각 성문터에 표지석을 세워 놓았는데, 그 위치는 다음과 같다. 북문터는 상당구 북문로 1가 123번지 맥도널드 앞(상당사거리 서쪽)이고, 동문터는 상당구 북문로 1가 30번지(도청사거리 북서쪽 어귀)이다. 남문터는 상당구 남문로 1가 209번지 앞(국민은행 옆)이며, 서문터는 상당구 서문동 96-1번지이다. 청주읍성은 임진왜란(7년 전쟁, 1592~1598) 때 의병장 조헌을 떠올린다. 청주읍성은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몇 달만인 1592년 7월 일본군에 점령당하였으며, 의병장 조헌, 박춘무와 승병장 영규대사가 의병, 승병 3천500여명을 규합하여 동년 8월 2일(당시 양력 기준 9월 6일) 탈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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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당산성 안내도
상당산성을 찾아가는 길은 청주시내(청주시청 이나 충북도청-모두 상당구에 소재)에서 512번 도로를 이용하여 우암산 자락을 경유한다. 우암산 고갯길을 오른 후에 산성마을로 들어선다. 공남문(남문)과 동장대(보화정) 사이에 있는 길로 산성 안으로 들어선다. 산성 안에는 전통음식점이 들어 서 있으며, 연못이 있다. 산성을 한바퀴 산책하고 싶으면 연못 앞에서 동장대(보화정)나 공남문(남문)으로 향하면 된다. 상당산성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디지털청주문화대전 홈페이지에 실려 있다. 임진왜란과 관련하여서는 1596년(선조 29년)에 개축하였다고 한다. 이 시기는 바로 정유재란이 발발하기 전 조선정부에서 산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과 때를 같이 한다. 그러나 산성 수축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백성들 역시 산성보다는 읍성을 선호하였다. 생활권이 읍성 중심이었기 때문에 산성은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산성 수축을 등한시 한 결과는 곧바로 일본군의 대량 학살로 이어졌다. 대량 학살의 극적인 전투가 바로 전북 남원에 있는 교룡산성을 버리고 남원읍성에서 벌어진 제2차 남원성 전투(1597년 8월)이다. 이 전투에서 성내에 있는 군인과 민간인 전부가 몰살당하였다. 기록에는 1만이라 한다. 이 전투를 비롯한 많은 전투에서 산성을 버리고 읍성을 선택한 것은 정부의 일관성없는 정책과 백성들의 어리석음이 빚어낸 참극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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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당산성
① 가시권(정찰권)
첫 번째로 동쪽 성벽을 따라 북쪽 끝(북장대 터)에서 남쪽 방향으로 축차적으로 바라본 전경이다. 첫 번째 사진은 동암문 위쪽에서 바라본 것이며, 두 번째는 진동문(동문) 위쪽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동장대(보화정) 아래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우측 산봉우리가 것대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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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북쪽 성벽을 따라 동쪽과 북쪽을 바라보았다. 첫 번째 사진은 북장대 터에서 동쪽 방향을 바라본 전경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진은 북장대 터에서 북동쪽 방향(증평)의 평야지대를 찍은 전경이다. 네 번째 사진은 북쪽 성벽 서쪽 끝자락에서 북쪽 방향을 바라본 것이며, 다섯 번째 사진은 서장대(제승당)에서 청주시내(서쪽)을 바라본 것이다. 상당산성은 한쪽은 평야지대이며, 다른 한쪽은 산악지대이다. 외부의 공격을 쉽게 막아낼 수 있는 방어기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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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성 내부 전경
첫 번째로 동장대 입구인 연못에서 산성 동쪽과 북쪽, 그리고 서쪽 전경을 순서대로 찍은 것이다. 동쪽 사면으로는 토속음식점이 들어서 있고, 중앙에는 논과 밭이 보인다. 그리고 서쪽 사면으로는 논이 개간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상당산성은 분지형태(포곡식)의 산성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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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산성 중심부에서 북쪽 사면과 동쪽 사면을 차례로 찍은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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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산성 중심부에서 남동쪽 방향(동장대 방향)으로 찍은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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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성곽과 성문
성곽과 성문 전경은 동장대에서 시작하여 시계반대방향으로 진행한다. 상당산성의 총 길이는 4.4km이며, 높이는 4.7m이다. 사적 제21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소재지는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산 28-1번지이다.
첫 번째로 동장대 구역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래 4장의 사진은 차례대로 동장대 아래에서 공남문(남문) 방향, 동장대 방향, 동장대, 진동문(동문) 방향으로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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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진동문(동문) 및 북장대 방향, 그리고 진동문을 찍은 사진인데, 차례대로 북장대 방향, 외부와 내부에서 바라본 진동문, 진동문에서 북장대 방향으로의 성곽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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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동암문과 북장대 터 성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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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로 북쪽 성곽 전경이다. 첫 번째 사진은 북장대 터에서 서쪽 방향으로 찍은 전경이고, 두 번째 사진은 북쪽 성곽 서쪽에서 동쪽 방향(북장대 터)으로 찍은 사진이다. 세 번째 사진은 북쪽 성곽 서쪽 끝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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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로 서북쪽 성곽과 미호문(서문) 전경인데, 차례대로 북쪽 성곽 서쪽 끝자락에서 미호문(서문) 방향, 외부와 내부의 미호문(서문), 미호문의 성곽, 그리고 서장대 아래에서 미호문(서문) 방향을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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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로 공남문(남문)과 남쪽 성곽이다. 공남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치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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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는 도내에 소재한 중부내륙 산성군을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했다. 중부내륙 옛 산성군이 의미 있는 것은 충북을 중심으로 한 중부내륙 지역이 고대부터 군사적·지리적·역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충청북도는 도내의 212개 산성 가운데 대표적인 산성 7개를 잠정목록에 등재했다. 보은의 삼년산성, 청주의 상당산성, 충주의 충주산성과 장미산성, 괴산의 미륵산성, 제천의 덕주산성, 그리고 단양의 온달산성이 그것이다. 보존과 유네스코 등재도 중요하지만 역사적 고증을 철저히 하여 개보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역사적 고증이 힘들면 개보수는 후대로 미루는 것이 좋다. 유네스코 등재 욕심에 일을 그르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DCN 국방시민연대 전쟁사위원회 위원장 권순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