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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Mar
진주 진주성(晋州城) 2
작성자:
한국의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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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가면 동문격인 촉성문(矗石門)이고...
촉성문 밖의 모습. 문안에 촉석루가 보인다.
촉석루(矗石樓) 지정번호 : 경남 문화재 자료 제8호 소 재 지 : 진주시 본성동 지정일자 : 1983년 7월 20일 촉석루는 진주의 상징이자. 영남 제일의 명승이다. 진주성 남쪽 석벽 위에 우뚝하여, 웅장한 위풍은 진주성의 위상을 대변하고 있다. 일명 장원루(壯元樓) 또는 남장대(南將臺) 라고도 한다. 고려조 고종28년(1241) 진주목사 김지대(金之岱:1190 - 1266)가 창건하고, 충숙왕9년(1322) 목사 안진(安震: ? - 1360)이 재건하였다. 우왕5년(1379)에는 해구의 침략으로 불탄 것을, 조선조 태종13년(1413)에 목사 권충(權衷)이 중건하였고, 성종22년(1491)에는 목사 경임(慶 )이, 선조16년(1583)에는 목사 신점(申點)이 중수하였다. 선조26년(1593)에는 왜적의 침략으로, 진주성이 함락되는 와중에 또 불탄 것을, 광해군10년(1618)에 병사 남이흥(南以興)이 중건하였다. 경종4년(1724)에는 병사 이태망(李太望)이 중수하였고, 1950년 6.25전쟁으로 또 불탄 것을, 1960년 진주고적보존회에서 중건하였다. 하륜(河崙: 1347 - 1416)의 「촉석루기」를 비롯, 많은 시인묵객의 시서화가 오늘에 전한다.
너무 커서 카메라에 다 들어가지가 않는다.
촉석루에서 바라본 남강.
촉석루에서 의암(義巖)으로 나갈 수가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전에는 위암(危巖)이라고 불리웠던 이 바위는 제 2차진주성싸움에서 성이 함락되어 왜적들의 전승(戰勝) 자축연(自祝宴)에 나왔던 논개(論介)가 이 바위에서 왜장을 껴안고 투신한 후 의암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이 바위는 편평한 윗 면의 크기가 3.65m*3.3m로 강물 위에 솟았는데 오랜 시일을 두고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움직여서 때로는 육지의 암벽 쪽으로 다가서고 때로는 강 속으로 들어가서 암벽에서 건너 뛰기가 힘들 정도로 떨어지는 까닭에 그 뿌리는 어디에 닿았는지 알 길이 없다. 옛날부터 진주시민들 사이에는 이 바위가 암벽에 와 닿으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바위 서쪽면에는 정대륭(鄭大隆)이 논개의 충절을 기리어 새긴 의암(義巖)이란 글자가 있다.
의암쪽에서 바라본 진주성. 천연의 요새라 하겠다.
촉석루 옆에 논개의 영정을 모신 의기사(義妓祠)가 있다.
의기사(義妓祠) 이곳은 제2차 진주성(晋州城) 싸움 뒤 왜장(倭將)을 껴안고 남강(南江)에 투신한 논개의 영정(影幀)과 위패(位牌)를 모신 사당이다. 논개는 임진왜란중 계사년 전투에서 중과부적으로 진주성이 함락되자 논개는 왜장을 누 아래 의암 바위로 유혹하여 그를 껴안고 강물에 투신한 것이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적에게 더럽힘을 당하는 것을 피하여 자결한 여인들은 많았지만 논개는 제 한 목숨을 던져 온 성민의 원수를 갚았으니 그 의로운 기개를 어찌 장하다 아니 하리요! 논개사당은 영조(英祖) 16년(1740) 경상우병사 남덕하(南德夏)가 건립했는데 지금의 건물은 1960년 진주의기 창렬회에서 재건하였으며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성격 화끈한 논개 누나 모습이다..
남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촉석루.
다시 여장을 따라간다.
한바퀴 돌아 진주성의 입구인 공북문으로 다시 왔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영남포정사문루(嶺南布政司門樓)가 있다. 조선시대 경상남도 관찰사가 업무를 처리하던 영남포정사의 정문이다. 조선 광해군 10년(1618) 병사를 지내던 남이흥이 내성의 동쪽문을 고쳐 세우고 옆에 대변루(待變樓)를 새로 지었는데, 이것이 망미루의 본래 건물이다. 후에 영남포정사라고 하였으며, 경상남도 도청을 부산으로 옮기기 전까지 도청의 정문으로 사용하였다. ‘망미루(望美樓)’라는 현판은 수원 유수를 지낸 서영보가 쓴 것이다.
수령이 타는 말에서 내리라는 표석이다.
안쪽 모습.
진주성의 야경이다.
진주성은 야간에는 무료개방했다. 잘한 일이다. 아울러 성내에 진주성과 관계없는 야외음악당 같은 것은 다른곳으로 이전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답사를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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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N 국방시민연대 전쟁사위원회 연구위원 배용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