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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의 형태는 원형과 방형 2가지가 있으며, 내부에는 2~3단의 마루를 만들고 외부를 향한 벽면에 각 층마다 작은 안혈(眼穴)을 내어 대포·총·화살을 쏠 수 있도록 하였다. 돈대 설치의 기록은 조선시대 문헌에서 나타난다. 〈남한지 南漢志〉에 인조(1623~49 재위) 때 수축된 남한산성에 2기의 돈대가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1679년(숙종 5) 병조판서 김석위(金錫胃)의 건의에 따라 강화에 53개소의 돈대가 설치되었는데, 〈여지도서 輿地圖書〉에 그 명칭과 위치가 그려져 있다. 1796년 완공된 수원 성곽의 서북·남·동북의 3곳에 돈대가 설치되었는데 이를 공심돈(空心墩)이라 불렀으며 수원성(華城)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시설물이다. 현재는 서북 공심돈만이 남아 있다. 이러한 공심돈은 서양 중세 봉건제후 성의 일부인 탑과 유사한데 수원성 성역에 참여했던 정약용이 〈기기도설 奇器圖說〉을 연구한 것으로 미루어 서양 성곽을 본뜬 것으로 짐작된다. 축성연대는 53개 돈대중 49개 돈대는 조선숙종 5년 (1679년) 기미년에 유수 윤이제 재임시 어명에 의한 병조판서 김석주의 지휘를 받아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삼도의 승군(僧軍) 8,900명과 어영군 4,300명이 40일 만에 완축하였으며 빙현돈은 숙종44년 (1718년)에 유수 권성이 축조 하였으며 철북돈은 다음해인 숙종 45년 (1719)에 유수 심현택이 축조 하였고 초루돈은 그 다음에 숙종 46년 (1720)에 유수 어유구가 축조 하였고 작성돈은 영조 (1725)에 유수 박사익이 축조하였다. 그 후 양암돈과 갈곶돈 두 돈대는 너무 오래되어 폐쇄 하였고 51개 돈대만 수호 관리 하였다. 월곶진 : 월곶리 연미정과 황형기념비 근처(옥창돈, 월곶돈, 휴암돈, 적북돈을 관할) 제물진 : 갑곶리 강화역사관이 위치한 일대(갑곶돈, 염주돈, 제승돈, 망해돈을 관할) 용진진 : 연리에 복원됨(용당돈, 좌강돈, 가리산돈을 관할) 덕진진 : 덕성리에 복원됨(덕진돈, 손석항돈, 용두돈을 관할) 초지진 : 초지리에 이미 복원됨(섬암돈, 장자평돈, 초지돈을 관할) 인화보 : 인화리 인화돈의 남동쪽밭과 마을일부(작성돈, 구등곶돈, 광암돈, 인화돈, 무태돈을 관할) 승천보 : 당산리 승천포 부근(낙성돈, 숙룡돈, 소우돈, 빙현돈, 석우돈을 관할) 철곶보 : 철산리 철곶돈 맞은편 철산 교회 부근(천진돈, 철북돈, 의두돈, 불장돈, 초루돈을 관할) 정포보 : 외포리의 "성안이"라고 불리는 곳(석각돈, 삼암돈, 망양돈, 건평돈을 관할) 장곶보 : 장화리 장화감리교회 하단 부근(검암돈, 장곶돈, 북일곶돈, 미곶돈을 관할) 선두보 : 선두리 "진터"로 불리는 정족산성의 서문 아래쪽(후애돈, 동검북돈, 택지돈을 관할) 광성보 : 신현리에 복원됨(광성돈, 오두돈, 화도돈을 관할) ※ 영문(營門) 관할 돈대 : 망월돈, 계룡돈, 굴암돈, 송강돈, 송곶돈, 분오리돈 ※ 폐지된 돈대 : 갈곶돈, 양암돈 강화대교를 건너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본다. 1. 월곶돈대(月串墩臺) 강화읍 월곶리 월곶 242 月串鎭址가 위치한 월곶리의 해안고지에 위치하고 있다. 月串墩臺는 한강 진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으로는 염하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祖江을 통하여 서해로 진출 할 수 있다. 원래 月串墩臺는 朝鮮 肅宗 5년(1679) 尹以濟가 정비한 돈대이다. 현재 돈대의 평면형태는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규모는 동서 폭 47m, 남북 폭 38m이다. 서쪽의 중앙부에는 홍예문이 있다. 돈대 대부에는 동남쪽에 치우쳐 ‘故功臣將武公黃衛’라 적힌 碑를 찾아 볼 수 있다. 월곶돈은 연미돈으로 불리우기도 하며 규모는 높이 30자, 둘레30m로 둥글고 모지게 쌓았고 장졸로 수직케 하였다고 전해지지만 현재 남동쪽 석벽이 잘 남아있는 편이며 서남쪽 홍예문과 그 주변의 석벽이 일부 잔존한다. 6개의 포좌가 있었으나 현재 포좌를 확인할 수는 없고 푸고 2구만이 확인되고 있다. 월곶돈은 한강 진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도와 마주하고 있다. 남으로는 염하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조강을 통하여 서해로 진출할 수가 있다. 이 월곶 포구는 서울, 인천, 연백 등지로 교통할 수 있는 요지 중의 요지이다. 2008년까지 48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월곶돈대와 연미정, 월곶진의 발굴.복원공사를 추진하는 한편 주민과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인근 월곶검문소 역시 군부대와의 협의를 거쳐 이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얼마전까지 이곳은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출입할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해제가 되었다. 깨끗이 복원된 월곶돈대다.
돈대안에 강화유일의 정자 연미정이다.
건너편 북한땅.
월곶돈대 위쪽으로는 민통선이라 들어가기가 까다롭다.
돈대 밖으로는 월곶진의 발굴이 진행중이다.
이곳부터는 민통선이라 다른돈대는 군부대 때문에 갈수가 없다. 간신히 초루돈대만을 오를수있었다. 2. 초루돈대(譙樓墩臺) 양사면 북성리 산47 돈대는 해발 45m의 낮은 구릉상에 축조한 돈대로서, 해안과 가깝기 때문에 해안수비에 유리하다. 평면형태는 남북축이 긴 타원형으로 북쪽으로 3좌의 포좌를 설치하고 남쪽의 출입구를 마련하였다. 출입구 문주석의 왼쪽에는 4행으로 된 축조시기(康熙五十九年四月 日)와 관직명 적힌 銘文이 남아있다. 명문에 의하면 朝鮮 肅宗 46년(1720)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돈대는 해발 45m의 낮은 구릉산에 화강암을 치석하여 계란형 평면으로 쌓았다. 크기는 남북 45m, 동서27m이고 벽체를 따라 북쪽과 북서 북동쪽에 포좌가 있으며 출입문은 남쪽에 있다. 돈대의 바깥 벽면은 한단의 기단석 6~8단 방형 화강을 15cm 가량 들여쌓고 있으며 돈대 상면에 할석을 3단으로 쌓아 흙으로 마무리 했다. 다른 돈대와는 달리 낮은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금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하다. 이 돈대는 남북축이 긴 타원형으로 동쪽과 북쪽의 석벽은 붕괴가 심하다. 포좌는 붕괴, 원형이 훼손되었으나 포구는 3구중 2구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현존 석벽은 7~8단 정도의 높이어서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안으로 들여쌓은 퇴물림 방식을 택하였다. 남벽에는 여장 흔적이 일부 잔존하고 있으며 전돌 사용 흔적도 보인다.
북한땅이 너무도 가깝다.
외벽은 그런대로 양호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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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N 국방시민연대 전쟁사위원회 연구위원 배용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