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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광성돈대(廣城墩臺) 소재지 : 불은면 덕성리 23-1 廣城墩臺는 광성보의 문지와 연결되어 북서쪽에 있는 돈대이다. 현재의 돈대는 1976년에 복원된 것으로, 포좌 4좌를 갖추고 있다. 돈대의 규모는 동서 35m, 남북 43m 정도이다.
광성보 문루와 연결되어 있다.
16. 손돌목돈대(孫乭─墩臺) 1679년(숙종 5)에 축조하였는데, 강화도의 다른 돈대들이 사각 모양인 것과는 달리 원 모양으로 만들었다. 1866년의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의 신미양요(辛未洋擾) 때 외국 함대들과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서, 1977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파괴되었던 성벽을 복원하였다. 돈대 입구에는 서해안 지역의 북한계선 식물인 탱자나무가 자라고 있다. 손돌목돈대에서 동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곳에 용두돈대가 있는데, 그 앞의 염하(강화와 김포의 경계를 이루는 수역)를 뱃사공 손돌이 왕의 오해로 억울하게 죽은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고 한다. 돈대의 형태는 정원(正圓)에 가깝다.
17. 용두돈대(龍頭墩臺) 소재지 : 불은면 덕성리 산124 사적 제 227호 광성보 내에 위치하는 것으로, 광성보 입구에서 남쪽으로 약 40m 떨어져 있는 육지에서 돌출한 암반위에 지어진 돈대이다. 돈대의 평면형태는 부채꼴상의 不定形으로 그 규모는 동서 29m, 남북 11m, 둘레 66m, 석벽의 높이는 2.4-2.6m이다. 외성과 연결되는 98m에 이르는 통로를 만들고 강화도의 돈대중 바다쪽으로 가장 돌출된 지형에 만들어 졌다. 돈대 중앙에는 故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로 쓰인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성의 생김새가 마치 용의 머리와 같다 해서 용두돈대라 했다. 좁은 강화해협에 용머리처럼 쑥 내밀고 있는 암반을 이용해 설치한 천연의 교두보인 것이다. 물이 빠지고 나면 건너뛰어도 될 듯한 좁은 강폭이 절묘한 지형을 이루며 서울을 지척해 두고 있다. 이곳 역시 병인·신미양요 때 프랑스군·미군과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던 현장이다. 고려 때부터 천연의 요새였던 이곳은 조선 숙종5년에 축조되었다. 용두돈대는 보수공사중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대신 성곽의 속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지난번 답사때의 사진으로 대체한다.
해안으로 한참 나와 있는 돈대다.
덕포진의 포대가 바로 앞이다.
18. 오두돈대(鰲頭墩臺) 소재지 : 불은면 오두리 5대 華島墩臺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약 1㎞ 정도 떨어진 지역으로 바다로 돌출한 육지의 첨단부 정상에 鰲頭墩臺가 위치한다. 오두돈대는 동쪽으로 바다와 마주하고 있고, 그 내부는 평탄하지만 동쪽과 남쪽은 경사가 급하다. 현재는 보수․정비되어 복원된 상태이며, 주변에는 자기와 기와편등이 수습된다. 돈대의 동남쪽 오솔길 아래에 오두정지와 강화전성이 위치한다. 오두돈은 불은면 화도독 해변 뫼뿌리에 있으며 남쪽에는 광성돈에 있다. 그 내부는 평탄하며 전면은 단애로 형성되어 있다. 문지 좌우 및 석벽 일부가 붕괴되어 있으나 대체로 양호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복원 중이다. 이 돈대에서는 미석도 확인된다. 이 돈대는 강화 외성광의 연결 흔적이 남아 있으며 포좌의 위치가 외성보다 안에 있는 것으로 보아 외성이 돈대의 포좌 위치보다 낮았음을 알 수 있다. 오두돈에서 가리산돈대까지 5돈대는 현재 강화군청에서 복원을 계획하고 있다. 강화의 거의 모든 돈대가 이처럼 위장되어 있다.
아랫부분만 옛날 모습인 것 같다.
하지만 앞쪽은 거의 원래 모습이다.
옆쪽은 반반.
안쪽 수구.
바깥쪽.
정원(正圓)에 가까운 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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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N 국방시민연대 전쟁사위원회 연구위원 배용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