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전라도 육군 사령부를 찾아서!
-이순신과 원균의 만남-
-하멜의 조선 이야기-
■ 주변 지역
강진군 내에서도 북쪽 지역인 병영면 성동리에 위치해 있다. 동쪽에는 병영면에서 가장 높은 수인산(561.2m)이 위치해 있다. 수인산에는 백제시대의 성인 수인산성이 있는데, 삼국시대 왜구의 침입으로 강진을 포함한 주변 여러 고을(장흥, 영암, 보성)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성으로 활용되었다. 북쪽과 남쪽에는 수인산 줄기가 뻗어 내리고 있다. 북쪽에는 수인산을 기준으로 성자산(294m), 옥녀봉(255m), 깃대봉(200m)이 점차 낮아지며, 남쪽에는 성락산(274m), 금봉산(271.5m)이 있다. 서쪽에는 넓은 벌판이 펼쳐지고 멀리 월악산(808.7m) 국립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수인산을 중심으로 평지에 쌓은 평지성이다.
■ 역사
'병영(兵營)'은 조선시대 지방군사 조직이다. 남해안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국내 병영성 가운데 남해안 지방의 것으로는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강진 병영성(강진군 병영면 성동리)은 조선조 500여 년간 전라도와 제주도를 포함한 5개의 영(營)과 53주(州) 4성(城)을 총괄한 육군 훈련 및 지휘부 기능을 담당했던 총사령부이다. 서양에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소개했던 네덜란드 선원 하멜이 선원 33명과 함께 1656년 강진 병영으로 유배되어 7년(효종 7년~현종 4년) 동안 살면서 노역했던 곳이다. 본국으로 돌아간 하멜은 '하멜 표류기'를 저술해 당시 우리나라의 정치, 문화, 풍속 등을 세계에 알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동학)을 맞아 병화로 소실되었고, 이어 1895년 갑오경장의 신제도에 의해 폐영되어 석축과 건물터만 남아 있었으나 1997년부터 10년간 국비와 지방비를 들여 현재 복원사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강진 병영성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 인물이 아마도 네덜란드 선원인 하멜이지만, 이보다 50여년 앞선 시기에 이곳에서 이순신 제독과 원균 사령관이 만났다는 것은 생소할 것이다.
임진왜란(7년 전쟁)이 발발하고 난 이후 일본군이 평양으로 진격했다가 조명 연합군의 반격에 밀려 경상도 남해안으로 퇴각한다. 이후 명과 일본은 화의를 맺으면서 7년 전쟁은 기니긴 교착 상태에 빠진다. 교착 상태가 계속되고 있던 1954년 12월 조선 조정에서는 이순신 제독과 갈등을 겪고 있던 원균을 충청도 육군 사령관으로 전보 조치하고, 얼마 후 다시 전라도 육군 사령관으로 전보 발령 조치한다.
1596년 윤 8월 11일 이순신은 한산도를 출발하여 동년 9월 26일 순천부에 도착할 때까지 44일간 체찰사와 부체찰사(한효순)와 함께 전라우도 남부 지역을 순시한다. 8월 22일 전라 병영에 들러 원균과 만나 밤이 깊도록 대화한다. 23일은 기록이 없고, 24일에 가리포에 들러 지형을 살펴보고 다시 병영으로 와서 유숙했다. 원균의 흉악한 행동이 있었던 것 같다. '원균의 흉악한 행동은 이곳에 적지 않겠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25일 다시 전라우도 지역을 순시한다.
■ 사령부(병영성兵營城) 규모 및 구조
길이는 1,060m이며, 높이는 3.5m, 면적은 93.139㎡(28.175평), 성곽 시설 수구문 3개소, 옹성 7개소, 건물터, 초석과 25기의 비석(면사무소 안)이 있다.
강진 병영성의 규모는 '세종실록지리지' 이후 간행된 각종 지리지를 통해서 짐작해 볼 수 있는데, 가장 오래된 기록인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병영성의 둘레를 561보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후의 지리지들에는 거의 공통적으로 2천820척으로 나와 있다. '치(稚)'는 성벽과 성벽이 만나는 지점과 적을 관찰하기 쉬운 성벽의 특정 지점에 설치하는 일종의 성 축성의 양식인데, 여타 문헌에도 치(雉)에 관한 뚜렷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실제 이 성(城)은 현지 조사에서 성벽의 교착점 4곳과 동벽 2곳, 서벽 2곳에 치가 설치된 흔적이 발견되었다. 또 급수 시설과 관련한 우물은 '문종실록'에는 4개소, '대동지지'에는 5개소, '병영지'는 9개소로 기록되어 있으며, 다량의 물을 확보할 수 있는 지(池)의 경우는 '대동지지'에 2개소, '병영지'에 5개소로 나와 있다. 시기가 내려올수록 조금씩 수가 늘어나고 있어 당시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전체 전경
① 남문에서 북문 방향(성자산이 보인다)
② 남문에서 서쪽방향(멀리 월출산이 보인다)
③ 남문에서 동쪽 방향(수인산이 보인다. 앞 능선이 성락산(274m) 능선이다. 성벽에서 꺽인 부분이 동쪽 성벽으로 이어진다. 이곳부터 동문까지는 완전히 무너진 채로 보수를 기다리고 있다)
■ 성곽 전경
이해를 돕기 위해 동문을 시작으로 하여 시계 반대 방향인 동문~북문, 북문, 북문~북서, 서문, 남문, 남문 동쪽 끝 등 7개 부분으로 나누었다.
▼ 동문
① 동문 입구(밖→안)
② 동문 옹성 안쪽
③ 동문 입구(안→밖, 정동 방향)
④ 동문 입구(안→밖, 남동 방향)
▼ 동문~북문
① 성곽 위(성곽 위로 세월을 견뎌온 역사의 나이테가 서 있다)
② 성곽 안쪽
③ 동문 북쪽 치(이 치를 돌면 북쪽 성곽이 시작된다)
④ 동북 치→동문
⑤ 동북 치→동문
⑥ 동북 치→북문
⑦동북 치→북문
▼ 북문
① 북문 옹성
② 북문→동북 치
▼ 북문~북서
① 북서 치에서 북문 옹성을 바라본 성벽
② 북서 치에서 서문 방향을 바라본 성벽
③ 서문 가기 전 치에서 북동 방향으로 바라본 성벽
▼ 서문(병영성 동쪽에 있는 수인산 줄기가 보인다)
① 서문 옹성(밖→안)
② 서남 치(서문 방향)
③ 서남 치(서문 방향)
④ 서남 치의 수구(수구가 2개인 것이 인상적이다)
▼ 남문
① 남문 옹성(밖→안, 서쪽 방향)
② 남문 옹성(밖→안)
③ 남문 옹성 내부
④ 남문 옹성(안→밖, 동쪽 방향)
▼ 남문 동쪽 끝
① 남동 끝 성곽 내부에서 바라본 남문
② 남동 끝 치
▼ 남동 성벽터
① 이름 모를 비석
② 낙조에 물든 세월 나무
■ 사령부 연혁 및 축성 책임자
▼ 연혁
설치 : 태종 17년(1417년) 1월 광산현 고내상성(광산 고내상, 現 광주공항 뒤편)서 옮겨져 馬天牧 축성
폐영 : 고종 32년(1895년) 갑오경장 후 신제도에 의해 폐영
유적 : 사적 397호 지정
▼ 축성 책임자
'강진군지'와 '조선환여승람'에 따르면 마천목(馬天牧)이 병마절도사로 와서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마천목은 장흥 출신으로 조부(祖父)인 마치원(馬致遠)이 장흥 수령성을 축조하였고, 부친 마영(馬 榮)도 왜구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1895년의 '병영영지(兵營營誌)'에는 창설 당시 마 병사가 일망대에 올라가서 활을 당기며 말하기를 '후세에 활쏘는 자들 중에서 내가 쏜 곳까지 미치는 자가 없을 것이다. 또한 적의 화살도 이르지 않을 것이니 내 화살이 떨어진 곳에 성을 쌓도록 하라'하여 그 곳에 성을 쌓게 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병영성의 건립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마천목과 병영 건립의 밀접한 관련성을 암시해 준다.
■ 사령부 운영
도량형 단위는 당시의 단위를 그대로 기재하였다.
강진 병영성 주둔군과 관련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조선 전기에는 정군(正軍) 498명, 수성군(守城軍) 51명, 조역군(助役軍) 163명, 장인(匠人) 141명이 소속돼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전후로 대략 350여명이 주둔했다가 대폭 줄어들었다.
'부역실총(賦役實摠)'에 따르면, 병영의 재정은 크게 중앙의 각 관청에 상납하는 경사상납질(京司上納秩)과 병영 자체 수용에 충당하는 본영봉용질(本營奉用秩)로 나누어져 있는데, 강진 병영성에서는 해마다 비변사를 비롯해 중앙의 5개 관서에 부세를 납부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비변사에는 유의가전 등 318냥, 훈련도감에 12냥, 기로소에 4냥, 중추부에 10냥, 도총부에 15냥 등 모두 359냥에 이른다.
그리고 병영의 자체 경비는 중앙 상납분과는 달리 미곡과 포목, 현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미곡은 영수미와 잡비 516석 10두, 진상가미와 잡비 266석 9두, 시탄가미와 잡비 272석 12두 등 모두 1천56석 1두이다. 포목은 군수미 명목의 184동 29필이고 그에 따른 잡비는 704냥 8전 3분이다. 현물은 가죽, 땔감, 약재, 종이 등 모두 18종류에 달한다. 이외에도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명목의 경비나 창고 비축분 등이 실제로는 더 존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DCN 국방시민연대 전쟁사위원회 위원장 권순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