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동문이다. 두터운 동문 옹성의 모습이다. 
건너편으로 가려면 다시 내려가야했다.
안쪽에서 바라본 성곽북쪽면이다.
동문이 옹성으로 둘러져 있다. 동문옹성으로 나가 본다. 
바깥쪽 모습이다.
저 끝이 치성이고..90도 꺾이며 북쪽성곽이된다. 오던길 반대로 가보자.
진도 끝자락에도 멋진 산이 있네...
치성을 돌자 북쪽 성곽이 보인다.
북쪽 수구(水口)모습이다.

뒤돌아 본 모습.
저 치성을 돌면 서쪽 성곽이다.
담쟁이에 둘러 싸인 서쪽 성벽
서벽을 따라 가니, 이윽고 서벽이다.
서문은 동문과는 입구가, 옹성형태에서 약간 다르다.

서문옆에 남도석성 만호비다.
이곳 성에 부임했던 수군의 수장(首長) 중에서 뛰어났던 수군만호(水軍萬戶)들을 기념하는 비다. 만호란, 벼슬(군인이니까 계급인가?) 이름인데, 고려 말 수군을 재건할 때 각 도별로 도만호(都萬戶) 관하에 만호(萬戶)·천호(千戶) 등을 두면서 비롯되어, 조선 태종 때에는 3품 이상의 관직을 기리키다가 1443년(세종 25년)에 3~4품을 모두 만호로 통일하여 각 도에 둔 제진을 관장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 뒤 종4품으로 고정되었다.) 이곳에는 모두 여섯 분의 만호비가 모셔져 있다.
치성을 지나면, 원점 남문이다.
남문앞에는 남도석성의 단운교와 쌍운교가있다.
공식 명칭은 '진도 남동리 쌍운교 및 단운교'로서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 215호로 지정되어 있다. 남도석성의 남문 밖을 흐르는 개울인 세운천을 건너는 무지개다리들이다. 단운교가 세워진 시기는 1870년 이후이나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쌍운교는 주민들이 1930년 경에 세웠다고 한다. 이 둘은 그 자체 문화재가치도 뛰어나지만, 남도석성과 어울려서 더욱 그 운치를 자아낸다.
쌍운교의 모습이고..
쌍운교와 남문
단운교의 모습인데 담쟁이 때문에 잘 안보인다.
다시 남문위로 올라 남쪽성곽에서 동쪽벽을 밟아본다. 
저기 치성을 돌면 동문이다.
동문 옹성

뒤돌아가며 느낀 점은, 이쪽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안쪽이 매우 낮았다.
바깥에서는 높은 벽이다.
안쪽모습으로 높이가 사람키보다 낮으나, 바깥쪽은 그렇지가 않았다.

남쪽면에는 해자도 있고..
해자로 이어지는 남쪽 수구(水口)
남문의 기둥.이것이 그랭이 공법인가?
남쪽 성곽으로 안쪽보다 매우 높았다.
남쪽 수구
치성이며, 이곳에서 동쪽면으로 방향을 바꾼다.
동문 옹성이다.
밑부분에는 큰돌로 이루어진 두터운 옹성이다.
어느 할머니를 만나 여기사정을 들었다.
관계기관에서 여기 입주자에게 이주보상을 다 끝냈다고 하는데, 입주자들이 이주안하고 버티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정비도 안돼고, 보수도 안돼며 엉망이란 얘기다.
그리고 동문, 서문에도 문루를 세울 예정이었으나, 정비사업에 차량이 드나들기 때문에, 차량통행을 위해 아직 문루를 못만들었단 얘기다.
이해가 된다. 옹성에 문루까지있으면 차량이 드나들수가 없다.
참으로 멀고도 험한 남도석성복원작업이다.
남도석성은 전형적인 읍성형태를 보이고, 보존상태도 좋았다.
해미읍성,고창읍성,낙안읍성과 거의 같은형태이지만, 원래 수군진영이라서 처음부터 읍성으로 분류가 안된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름다운 진도대교를 건너며, 진도의 산성 읍성 답사를 마친다.
DCN 국방시민연대 전쟁사위원회 연구위원 배용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