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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Mar
강화의 진(鎭)과 보(堡) 3 -광성보
작성자:
한국의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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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廣城堡)
종 목 : 사적 제227호
명 칭 : 광성보(廣城堡)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시설
수량/면적 : 6,102㎡
지 정 일 : 1971.12.28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33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사유
관 리 자 : 강화군
광성보는 덕진진, 초지진, 용해진, 문수산성 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이다.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1233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외성을 쌓았는데, 이 성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성으로 바다길을 따라 길게 만들어졌다. 광해군 때 다시 고쳐 쌓은 후 효종 9년(1658)에 광성보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숙종 때 일부를 돌로 고쳐서 쌓았으며,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 소속 돈대가 만들어 졌다.
영조 21년(1745)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었는데 ‘안해루’라 하였다. 이곳은 1871년의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용감히 싸우다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순국하였으며 문의 누각과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파괴되었다.
1976년 다시 복원하였으며, 광성보 경내에는 신미양요 때 순국한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와 신미순의총 및 전적지를 수리하고 세운 강화전적지, 수리한 것을 기록한 비석 등이 건립되었다.
입구 안해루(按海樓)다. 보수공사중이라 작년사진으로 대신한다.


안해루 바로 옆의 광성돈대. 

안해루에서 한참 들어가면 손돌목돈대다. 
손돌목돈대. 자세한 설명은 돈대편에서 하겠다.
돈대 내부.
용두돈대와 광성포대는 더 들어간다.
용두돈대도 보수중이라 들어갈수가 없다. 
광성포대.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
광성보에서 전사한 용사들의 무덤이다. 전투 후 어재연 형제의 시신은 친지들에 의해 고향에 모셔졌다. 하지만 신원을 알수 없는 51인의 시신을 7기의 분묘에 나누어 합장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쌍충비각
광성보 전투에서 순절한 어재연 형제 및 병사들의 원혼을 기리기 위해 세운비석이 있는 곳이다. 기록으로 보아 어재연은 회령부사, 병마절도사등을 지낸 전형적인 무관이었으나 고향으로 내려와 있던 중 광성보로 급파된 듯하다. 염하를 무단 침입한 미함대에게 조선수비대가 선제공격을 감행한 ‘손돌목 포격전’ 직후 급히 명을 받아 강화도로 오게 되었다 한다. 아마도 수년전 병인양요때 광성진 수비를 맡았던 경험이 고려된 듯 하다. 3백여명의 장졸들을 이끌고 백병전까지 벌이며 분전하다 아우 재순과 함께 장렬히 산화했다.
다시 입구로 나간다.
DCN 국방시민연대 전쟁사위원회 연구위원 배용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