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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진(龍津鎭) 

종    목 : 시도기념물 제42호 (강화군) 
명    칭 : 용진진(龍津鎭)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시설 
수량/면적 : 일원 
지 정 일 : 1999.03.29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선원면 연리 215외 9필지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산림청)외 5인
관 리 자 : 강화군
상 세 문 의 : 인천광역시 강화군 문화관광과 032-930-3626

진이란 군인이 머물러 있던 무장 성곽도시를 이른다. 용진진은 조선시대 각 진에 배치되었던 병마만호의 관리하에 있었던 곳으로, 군관 24명, 사병 59명, 진군 18명 도합 101명의 병력이 주둔해 있었다 한다.

포좌(포를 놓는 자리) 4개소, 총좌(총을 놓는 자리) 26개소의 시설물이 있었으나 석축 대부분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을 이루고 있는 출입문 2곳만이 남아 있었는데, 1999년 그 위로 누각을 새로이 복원해 놓았다.

조선 효종 7년(1656)에 축조되었으며, 가리산돈대·좌강돈대·용당돈대 등 3개의 돈대를 관리하였였는데 세 돈대 모두 배가 닿는 곳이다 한다.

성문 참경루(斬鯨樓)다. 안쪽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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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쪽이다. 여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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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경루에서 이어지는 좌강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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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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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진은 문루와 좌강돈대만이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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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강돈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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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곶진(月串鎭)
월곶돈대가 속해있는 월곶진은, 한창 발굴이 진행중이었다. 포대의 포구하나 발굴된것까지 확인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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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전성(江華塼城)

종    목 : 시도기념물 제20호 (강화군) 
명    칭 : 강화전성(江華塼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일원 
지 정 일 : 1995.03.01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불은면 오두리 563외 6필지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재정경제부)외 4인
관 리 자 : 강화군
상 세 문 의 : 인천광역시 강화군 문화관광과 032-930-3626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오두리에 있는 이 산성은 다듬은 돌을 쌓아 기초를 마련한 위에 벽돌로 쌓아 올려 만든 전축성(塼築城)이다.

성을 쌓은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 고종(재위 1213∼1259) 때 처음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강화의 외성에 속했던 것으로 알려 있다.

비가 오면 성의 흙이 흘러내리자, 조선 영조 19년(1743) 당시의 강화유수였던 김시혁이 나라에 건의하여 벽돌로 다시 쌓아 이듬해에 완성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성의 길이는 약 270m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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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으로 깨끗하게 복원하여 놓은곳이 있는데, 일반집 담벼락같아서 역사성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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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외성은 고려 23대 고종이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뒤 고종 20년(1233) 해안 방어를 위해 적북돈대로부터 초지진까지 23km에 걸쳐 쌓은 성이다.

강화성은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읍성이다. 외성은 동쪽 해안을 따라 쌓았는데 몽고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게 한 가장 중요한 방어시설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고종 24년(1237)에 강화외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조선시대에도 비상시에 국왕의 피난처인 도성(都城)의 외성(外城)으로 광해군 10년(1618)에 보수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숙종때 병자호란기(1636)에 허물어진 외성을 돌을 이용하여 다시 쌓았고 돈대(墩臺)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영조때 강화유수 김시혁(金始爀)이 비가 오면 성의 흙이 흘러내려 나라에 건의하여 영조 19년(1743)에서 이듬해에 걸쳐 벽돌을 이용하여 다시 쌓았다고 한다.

2001년 동양고고학연구소에서 실시한 오두돈 주변의 전축성 구간에 대한 지표조사 결과에 의하면, 뻘층을 기초로 머리돌을 올리고 그 위에 대형석재로 석벽의 중심을 삼고 그 위에 머리돌을 올리고 다시 전돌을 여러 단 쌓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성은 높이 20척, 폭 5척이며, 6개의 문루(조해루·복파루·진해루·참경루·공조루·안해루)와 암문 6개소, 수문 17개소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강화외성은 고려 후기∼17세기 후반 도성의 구조와 축성기법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 성은 벽돌로 개축한 전축성(塼築城)이 오두돈 주변(남측)에 남아 있어 수원 화성(사적 제3호)과 더불어 전축성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DCN 국방시민연대 전쟁사위원회 연구위원 배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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