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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진진
덕진진은 조선시대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충지로 원래는 수영에 속하는 진이었다. 덕진돈대, 남장포대 등이 모두 덕진진에 소속되어 있었다. 돈대와 포대는 1679년(숙종 5)에 설치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양헌수 장군의 부대가 밤을 틈타 이 진을 통과하여 정족산성에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했다. 덕진진의 성문인 공조루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만 남아 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했다. 사적 제226호로 지정되었다.
남쪽 및 남서쪽(덕진교)에서 본 덕진돈대 능선
덕진교에서 초지진(남쪽)으로 본 강화 외성. 제방에 의해 논으로 변해버린 갯벌지대. 자전거 도로. 해안도로 둔덕이 강화외성이다.
덕진돈대 및 하단에서 본 초지대교.
◎ 덕진돈대
덕진돈대는 덕진진에 소속된 2개 돈대 중 하나이다. 북쪽의 광성보와 남쪽의 초지진 사이에 위치하여 강화 수로의 가장 중요한 길목이기도 하다.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국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다. 이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
돈대 출입구가 보인다. 서쪽으로 나 있다. 좌측 모서리에서 강변 쪽으로 돈대 성벽을 보고, 우측 모서리로 간다.
좌측 모서리에서 본 덕진돈대 성벽.
우측 모서리에서 본 돈대 성벽. 앞쪽에 경고비가 서 있다. 경고비 앞에서 동쪽 돈대 성벽을 본다.
동쪽 돈대 성벽.
경고비. 1876년(고종 4)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강화 덕진 첨사가 건립한 것으로 개화기에 외국선박의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척화의 의지를 담고 있는 비이다. 비의 크기는 높이 147cm, 너비 54.5cm, 두께 28cm이다.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고비 문구. 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바닷길을 막았으니 타국 배들은 통과할 수 없다).
외부와 내부에서 본 덕진돈대 출입문.
출입문에서 동쪽 해안가로 본 돈대 내부. 포혈이 강 중심부로 2개, 강 상류 및 하류로 각각 1개씩 설치되어 있다.
포혈에서 출입문으로 본 덕진돈대.
덕진돈대 북측 성벽 모서리에서 본 남장포대 및 해안선, 그리고 광성보의 용두돈대 및 덕포진. 남장포대 너머로 덕진진의 문루가 보이고, 그 너머로 얕은 산들이 해안쪽을 향해 달리고 있다. 덕진진에서 광성보까지 강화 외성은 이 언덕을 연결하면서 이어진다. 손돌목의 물살이 매우 거세다.
◎ 남장포대
남장포대는 덕진진에 소속된 포대로 강화의 8개 포대 중 하나이다. 포좌 15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때 덕진돈대와 함께 미국 아시아함대와 맹렬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던 곳이다. 성첩과 시설물은 이때 모두 파괴되었는데, 1977년에 다시 복원하였다. 포문은 강 상류, 중심부, 하류로 각각 향해 있다.
철망으로 둘러싼 곳이 수구문이다.
남장포대 토성 위에서 본 덕진돈대.
포각이 염하 상류, 중류, 하류로 향해 있음을 알 수 있다.
◎ 덕진진 문루(공조루)
외부와 내부에서 본 공조루.
공조루.
공조루 위로 떠오르는 달.
DCN 전쟁사위원회 위원장 권순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