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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진진에서 광성보로 이어진 성벽
덕진진에서 광성보로 이어진 성벽은 야산으로 이어져 있으며, 현재 해안도로 아래 땅 속에 매장되어 있다. 덕진진에서 광성보로 향해 가던 중, 광성보 남단에서 동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남, 서, 북쪽 360도 전경을 보았다.
동쪽 김포 덕포진(동남쪽 방향). 초지대교와 덕진진(남쪽 방향). 덕진진에서 광성보로 이어진 구릉지대 성벽 능선. 산 허리 하단부로 이어진 성벽 능선. 산 능선으로 이어진 성벽 능선(남서쪽 방향). 광성보 산 능선과 만나는 곳. 광성보 남단 성벽 능선의 해안가 절벽지대(서쪽 방향).
해안가 절벽지대에서 본 광성보 용두돈대(북동 방향). 손몰목과 김포 덕포마을.
▣ 광성보(사적 제227호)
광성보는 조선 1658년(효종 9)에 설치한 강화도 해안수비 진지의 하나이다. 1679년(숙종 5)에 강화도의 국방시설을 확장할 때 광성돈대, 광성보의 북쪽에 위치한 오두돈대 및 화도돈대를 함께 축조하여 이에 소속시켰다. 1745년(영조 21)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었는데 ‘안해루按海樓’라 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군대와 사투를 벌인 격전의 현장으로서 이때 전사한 어재연 장군을 기리는 전적비와 350여 명의 순국 영령들을 기리기 위한 신미순의총이 있다. 광성보에는 문루에 붙어 있는 광성돈대, 언덕 위에 있는 손돌목돈대, 해안가에 위치한 용두돈대 및 광성포대가 있다.
◎ 광성포대
광성포대는 조선후기 강화도 해안수비를 위해 설치된 방어시설 가운데 하나이다. 국방 강화책으로 강화도내에 내성, 외성, 12진보, 54돈대를 축조하였다. 이는 50년 동안 축조된 요새이다(1675년-1725년). 제19대 숙종(재위 1674-1720)이 시작하고 거의 완성했으며, 미완성된 부분은 제20대 경종(재위 1721-1724)이 마무리하였다. 그후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조선은 대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화력을 증가시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함에 따라 1874년(고종 11)에 초지진, 덕진진, 광성진, 용진진에 포대를 설치하였다. 광성포대는 손돌목 돈대 주변 3곳에 설치되었으며, 각각 9좌, 4좌, 3좌의 포좌를 갖추고 있었으며, 이중 규모가 가장 큰 포대는 길이 80m, 포좌의 크기 약 6m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1875년 운양호 사건을 계기로 외세에 문호를 개방함에 따라 파괴되었던 것을 2004년 발굴조사를 실시, 유적이 확인되어 복원정비를 하였다.
해안가 절벽지대 및 광성포대 앞에서 본 용두돈대 및 광성보 남쪽 능선과 강화외성 능선.
광성포대 앞에서 본 김포 덕포진 및 광성포대와 용두돈대.
광성포대 및 용두돈대 전경.
좌측, 우측에서 본 광성포대.
토성 아래와 위에서 본 광성포대.
광성포대 내부와 외부에서 본 김포 덕포진 및 광성보 손돌목 돈대. 포대가 손돌목 및 김포 덕포진을 향해 있다. 손돌목 돈대는 원형이다.
광성포대 위에서 본 덕진진. 용두돈대 해안으로 향하여 북쪽~동쪽~남쪽~서쪽으로 전경을 보았다.(6장)
북쪽 및 북서쪽 전경. 김포 대곶면 쇄암리.
서쪽 전경. 김포 대곶면 신안리 부래도(부렴, 부렴섬, 부렴산, 부락산). 덕포마을이 보인다. 부래도는 덕포리 서쪽에 위치한 섬으로 한강 물에 떠내려 왔다고 전하며 썰물 때는 육지와 연결된다. 이 섬은 남쪽에 위치한 덕포진과 연계하여 군사진지로 사용된 흔적이 있었다고 하지만 고증이 필요하다.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항무이도項無耳島가 부래도로 추정된다. '대동여지도'의 부래도는 남쪽 약산 동쪽에 위치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둘레는 약 375m이며, 밀물 때는 신안리 해안선과의 최단거리가 약 90m, 강화도 불은면 광성돈대 해안선까지의 최단거리가 약 520m이다. 현재 부래도는 일반인 출입 통제지역이다.
서남쪽 및 남쪽 전경. 손돌목이다. 물살이 거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쪽 전경. 광성보에서 덕진진으로 이어지는 강화 외성의 능선이 보인다. 용두돈대의 절벽이다.
DCN 전쟁사위원회 위원장 권순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