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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백제의 도성, 몽촌토성(하남 위례성)

 

-한성백제의 도성이었나, 군사기지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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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촌토성 주변 지형

 

몽촌토성은 풍납토성과 함께 한성백제(백제 초기 시대)의 도성으로 불리고 있다. 몽촌토성에서는 궁궐 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풍납토성을 한성 백제의 도성으로 보기도 한다. 2008년 11월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풍납토성 내의 풍납1동 197번지 일대를 조사하였는데, B.C.18~A.D.475 시기의 주거지 등 100여기의 유구를 발견했다. 이 조사에서 기존의 풍납토성 조사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창고로 추정되는 장방형 수혈들이 다수 확인되어 풍납토성 도성구조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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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의 장방형 수혈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으로 아차산성과 마주보고 있다. 특히 아차산성은 백제와 고구려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산성이다. 백제의 입장에서는 아차산성에 주둔한 고구려 군사들이 매우 위협적인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아차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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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촌토성 개념도

한성백제(하남 위례성)의 도성이라 할 수 있는 몽촌토성(송파구 오륜동)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8호선 몽촌토성역에서 하차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이 일대를 올림픽공원으로 조성했다. 지금은 몽촌토성보다는 올림픽공원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한성백제의 도성이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분분하다. 역사학계에서는 문헌과 고고학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한성백제를 보통 하북위례성과 하남위례성의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하북위례성의 경우, 북한산성 내의 궁궐터, 서울 우이동 일대, 방학동 토성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또한 임진강 유역을 하북위례성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하남위례성의 위치에 대해서도 풍납토성, 몽촌토성, 교산동토성과 남한산성 등과 같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임진강 유역의 경우 임진강 남쪽 지역만 발굴된 상태이며, 북쪽 지역은 휴전선으로 인해 발굴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통일이 되는 날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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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촌토성 답사

 

몽촌토성 답사는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에서 시작하였다. 토성 전체를 둘러보지는 못하고 북쪽 지역을 답사했다. 세계평화의 문을 지나 음악분수대를 거쳐 곰말다리에 이르렀다. 몽촌호수로 불려지고 있는 해자를 둘러보고 목책이 설치되어 있는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목책 일대를 둘러보고 몽촌 역사관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둘러 보았다.

 

몽촌토성역을 나오면 제일 먼저 올림픽공원 내에 설치되어 있는 세계평화의 문이 시야에 들어온다. 뒤로 만국기와 몽촌토성의 숲이 보인다.

 

▼ 토성 외부 전경

 

① 올림픽 공원

 

세계평화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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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기 뒤편으로 몽촌호수가 있으며, 음악분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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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성벽, 해자와 목책

 

만국기 뒤편에서 바라본 몽촌호수(해자)와 몽촌 토성의 서남쪽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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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말다리(몽촌교夢村橋), 몽촌은 꿈마을이라는 뜻이며, 꿈마을의 옛말이 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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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말다리에서 남쪽 방향인 몽촌호수를 바라본 전경이다. 음악분수대에서 물기둥이 치솟아 오르고 있다. 만국기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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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말다리에서 북쪽 방향의 해자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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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를 따라 북쪽으로 가 본다. 서북쪽 성벽이다. 대단히 높다. 몽촌토성 성벽의 최대 높이가 7m 정도가 된다고 한다. 자연 상태의 낮은 구릉을 이용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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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보이는 나무 숲 뒤에 목책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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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책이다. 목책의 기능은 돌진해 오는 기마병을 방어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기마병을 막을 수 없다. 2% 부족한 것이 아쉽다. 목책 사이 사이에 창날을 전방으로 비스듬하게 설치해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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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다리에서 서쪽 방향으로 바라본 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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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성 내부 전경

 

곰말다리 건너 토성으로 들어가는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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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입구의 좌측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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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입구의 좌측 성벽 위에서 남쪽 방향의 성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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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입구 안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성 내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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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입구 안쪽에서 북동방향의 토성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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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입구 안쪽에서 동쪽 방향의 토성 내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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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길을 따라 북쪽으로 향한다. 수령 320년이 된 높이 17.5m, 둘레 6m인 은행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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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역사관 방향으로 향한다. 토성 중앙부에서 서쪽 방향으로 성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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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북쪽 성벽의 서쪽 방향과 동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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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역사관의 남동쪽 성벽 안쪽에 위치한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충헌공 김구의 시비와 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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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촌역사관과 몽촌토성 출토 유물

 

① 고구려 광역도

 

다시 몽촌역사관으로 돌아와 전시실을 둘러 보았다. 눈길을 끈 것은 고구려 광역도였다. 국내성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거란, 후연을 정복하고, 북쪽과 동쪽으로 숙신과 동부여를 정복하였다. 또한 남쪽으로는 백제와 신라를 정벌하였다. 웅대한 기상으로 광대한 영토를 지배한 고구려, 대한민국의 미래는 고구려의 웅장한 포부를 되살리는 것이다. 고구려가 영토확장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경제확장을 통해 부를 축적해야 하고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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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몽촌토성 출토 유물

 

무기류, 검, 화살촉, 뼈갑옷 등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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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류, 세발토기, 굽다리접시, 시루, 항아리, 그릇받침 등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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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N 국방시민연대 전쟁사위원회 위원장 권순삼

 


우리궁궐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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