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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쇄국정책은 기득권의 자기 안일주의의 극단을 보여준다. 역사상 쇄국을 단행한 나라는 모두 역사에서 지워졌다. 명성왕후와 고종은 흥선대원군이 아주 잘 만들어 놓은 쇄국의 그물망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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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로당二老堂

 

이로당은 노락당과 함께 운현궁의 안채 기능을 담당한 건물로, 1870년(고종 7)에 건립되었다. 남자들이 드나들지 못하는 여자들만의 공간이며, 철저한 금남의 구역으로 바깥으로 출입문을 내지 않은 지극히 폐쇄적인 ‘입구 口’자형 건물이다. 원래 정면 7칸·측면 7칸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건물 서쪽 부분에 덧붙인 칸으로 인해 정면이 8칸으로 되어 있다. 건물 가운데에는 중정中庭(건물 안이나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뜰 한옥의 경우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마련된 작은 뜰)이 있다. 운현궁 안살림의 최고 책임자였던 이로당의 안주인은 흥선대원군의 부인이자 고종의 어머니인 부대부인민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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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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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당과 동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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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각과 남행각, 그리고 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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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당과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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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및 이로당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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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당의 앞뜰과 뒷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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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에 비석이 보인다. '경송비慶松碑'다. 고종 원년 영의정 조두순이 흥선대원군의 부탁을 받고 지은 글이 뒷면에 새겨져 있다. 고종이 왕이 되어 창덕궁으로 들어간 뒤 어릴적 함께 벗하며 놀던 소나무가 그리워 '정2품'이라는 관직을 내리고, 금관자를 달아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내역을 지은 글인데, 나무와 비석의 원래 위치는 양관 근처라고 한다. 구석진 곳에 있어 찾기가 힘들다. 방문객들의 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이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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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송비. 뒷면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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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당 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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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당 후면에서 본 노락당 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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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당 뒷뜰에 있는 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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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당 뒷뜰에서 노안당 뒷뜰로 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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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본 이로당의 출입문과 담장. 담장의 문양이 서로 상이하다.

 

▣ 유물전시관

 

운현궁 유물전시관은 운현궁과 대원군 관련 유물전시를 통해 역사속의 운현궁이 지녔던 가치와 한국 근대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다. 1관 및 2관으로 구성된 18개의 전시공간에는 각종 유물전시는 물론 모형, 영상, 판넬 등의 전시매체를 통하여 관람객들이 복원된 운현궁의 모습과 연혁, 그리고 대원군가의 연보, 유품 등을 통해 운현궁과 대원군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장이 되도록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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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전시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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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물전시관 출입구 안쪽 우측 벽면에 걸려 있는 흥선대원군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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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 유물전시관은 1관 및 2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1관 안쪽에 2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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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의 생활유물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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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대원군의 적색 조복 및 부대부인의 녹색 원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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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의 현색 면복과 명성왕후의 홍색 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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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군함 기함 콜로라도호. 미국은 1866년 8월 평양 대동강에서 불타버린 제너럴셔먼호사건을 응징하고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동시에 조선과 통상관계를 수립하기 위하여 조선 원정을 결정하고 주청駐淸 미국공사 로우(Low)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동시에 아시아함대 사령관 로저스(Rodgers)제독에게 조선원정을 명한다. 로저스는 기함 콜로라도호를 비롯한 군함 5척에 해군과 해병 1,230명, 함재대포 85문을 적재하고 1871년 5월 초순 일본 나가사키에 집결, 약 보름 동안 해상기동훈련까지 실시한 뒤 5월16일 조선원정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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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군함 Monocacy(신미양요에 참가, 1370톤급). 1871년(고종 8) 미국이 1866년의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조선을 개항시키려고 무력 침략한 사건이 신미양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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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함 고웅호 및 갑곶돈대. 1876년, 조일회담에 일본 대표단과 병력을 싣고 온 일본군함 고웅호高雄號가 강화도 앞바다에 정박해 있다. 일본측 회담대표 흑전청융黑田淸隆(쿠로다)와 부사 정상향井上馨(이노우에) 일행은 6척의 함선과 8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갑곶진으로 상륙하였다. 흑전청융은 일본육군 중장으로 개척장관開拓長官이라는 희안한 명칭의 각료직을 겸하고 있었다. 회담 당시 조선측 병사 수백명이 강화부 갑곶리의 수문과 성벽을 지키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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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함 운양호. 1875년(고종 12) 9월 20일, 강화해협을 불법으로 침입하여 조일간에 함포전이 발생하게 한 사건의 함선. 함재포로 강화도 초지진, 영종진에 맹공격을 가하고 육전대를 상륙시켜 약탈을 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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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동학혁명의 지도자 전봉준(1854-1895). 전봉준은 척왜양이, 부패계급 타파 등 국가정치와 사회제도의 전면개혁을 단행, 보국안민의 동학사상을 펼쳤다. 1894년 12월 28일, 전봉준은 전라도 순창에서 잡혀 서울로 압송되고 이듬해 3월에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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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서문시장. 조선조 3대 시장의 하나였던 서문시장. 장이 서던 날은 2일과 7일이었다. 농사산물과 직물, 잡화 등이 거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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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왕후의 홍색 노의와 상궁의 청녹색 당의. '노의'는 왕의 즉위식이나 혼례식에 입던 적의에 준하는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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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포와 화승총. 홍이포는 17세기 포구에 화약과 포탄을 장전하여 점화, 사격하는 화포다. 1/3 축소 모형이다.

 

▣ 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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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관 경비초소(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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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측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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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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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적인 풍경.

 

 

 

DCN 전쟁사위원회 위원장

 


우리궁궐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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