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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가야의 도로와 건물터

2009.04.05 09:57

id: id: 푸른언덕 조회 수:7391


경남 김해시 장유면 관동리 삼국시대 유적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도로와 이어지는 선착장이 발굴되었고,삼국시대의 지면식건물 구조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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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발굴 당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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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국 가야의 철을 매개로한 물자유통이나 교역,해안 가까이 있는 취락과 상가등을 구체적으로 밝혀낼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이다.
더구나,해수면 변동에 따른 삼국시대의 지형도 알수 있는 자료가 확인되었다.
현재의 형태는 원래유적은 땅에 묻고 그위에 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조사 발굴단의 설명으로는 유적지 위에 흙을 덮어 원래의 상태를 보존하고,유적 모형관을지어 놓았다한다.


지면식 건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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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식건물은 생활면이 지면에 있는것이다.따라서 고상식 건물 구조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이곳의 지면식 건물구조는 네모꼴의 형태로 길이450cm 내외의 정면과 측면이 각각 두칸으로된 규모가 대부부분이다.


지면식 건물터 위에 기둥을 세워 놓은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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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간격은 130cm~210cm로 다양하며,기둥구멍의 지름은 80cm안팎깊이는 80cm~100cm가량이다.기둥구멍사이에서는 점토에 짚을 섞어 사용한 벽의 흔적이 일부 확인되었고,기둥구멍 속에서 기와조각과 아궁이틀 조각이 출토되기도 했단다. 건물지는 대부분 도로의 진행 방향과 나란하게 설치되어 있어, 도로를 인식하고 취락을 조성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삼국시대의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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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도로는 남-북으로 남 간선도로와 여기에 연결된 지선으로 네 곳으로 이루어 졌다.마치 요즘의 고속도로와 인터체인지처럼 된 구조이다.간선도로는 대체로 6m가량의 노폭을 가지고있으며,바닥시설,옆도랑,배수시설,노면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지형이 낮은 남쪽은 성토하여 땅을 고른다음 노면을 만들었다.즉 북쪽은 단단하기때문에 노면그대로 사용하는등 지형에 따라 달리 사용하였다.
특히 지반이 낮고 물이 많은 남쪽은 나무기둥을 박고,흙을 덮은 다음 할석으로 보강하기도 하였다.
노면은 직경 3cm 내외의 잔자갈을 깔아 견고하게 다졌다. 일부구간에서는 사용으로 파손된 노면을 보수한 흔적이 확인되며, 수레바퀴 흔적이 남아 있는 곳도 있다. 또한 간선도로에서는 도로의 진행방향과 교차되게 설치된 배수시설이 확인되었다. 이 시설은 지름 20~30cm내외의 돌을 두 열로 놓고, 그 안에 판재를 넣어 만든 것으로, 도로의 양 옆으로 물이 빠지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흘러나온 물은 도로 옆에 만들어진 도랑과 연결되는 집수구로 모이거나 경사가 낮은 쪽으로 흘러가도록 되어 있다.
지선도로는 간선도로에 비해 단순한 구조로 약 4m정도 노면을 편평하게 정지한 뒤 양쪽에 도랑을 파서 만든 도로이다.
노면에 깐 잔 자갈과 수레바퀴 흔적이 부분적으로 확인된다.
이곳이 가야의 수춣항 이었다니,이곳에서 선적된 화물이나 곡물등 기타 인적 교류등등이 일본이나 동남아로 수출되었을 것이다.또한 수입도 이곳을 통하였을 것이며,짐작컨데 주변에 또다른 대규모 유적지가 우리 후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를일이다. 또한 간선도로는 가야의 왕궁지와 수출항이었던 이곳을 연결하는 국가 주요도로였을 것이다.
지선도로는 다른 마을과 연결된 도로이며 이곳 상가로 들어가는 길 등과 함께, 하나는 선착장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DCN국방시민연대 김호중ceod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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