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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 청 시기의 천단

2009.08.12 05:09

[레벨:17]한국의 산하 조회 수:7698

예전 한 국가를 다스릴 때, 황제가 하늘에 제사지는 곳이 있다. 이를 천단天壇, 제천단祭天壇, 원단圓壇이라 한다. 중국에서 제천(祭天) 의식은 예로부터 국가의 중요한 행사로서 역대 황제에 의해 행해졌다. 이 제사를 교사(郊祀) 또는 남교(南郊)의 제사라고 하였으며, 제단은 수도의 남쪽에 설치하였다.

천단은 명나라 태조 홍무제(洪武帝)가 난징[南京]에 대사전(大祀殿)을 짓고 천지(天地)를 함께 제사한 데서 비롯하며, 영락제(永樂帝)의 베이징 천도 후 베이징 남교로 옮기고, 가정제(嘉靖帝) 때 원구와 대향전(大享殿)을 축조하여 제천(祭天)의 장소가 되었다.

현존하는 천단은 베이징[北京] 외성(外城)의 남동쪽에 있으며, 약 6km의 성곽을 두르고 안에 원구(圜丘)·기년전(祈年殿)·황궁우(皇穹宇) 등의 건물이 있다.

원구는 흰 돌[白石]로 3중으로 지은 대원구(大圜丘)로서 하늘을 본떠서 만든 것이다.

기원전은 기년전의 북쪽에 있는 백석삼중단상(白石三重壇上)에 축조한 푸른 유리 기와로 지은 원형 3층의 아름다운 건물로서, 기곡(祈穀)의 예식을 행하였다. 청나라 건륭제(乾隆帝) 때 개수 확대하면서 대향전이 기년전으로 되어 현재와 같은 규모가 되었다. 기년전은 광서제(光緖帝:재위 1874∼1908) 때 소실했기 때문에 1890년에 재건하였다.

우리나라의 제천의례(祭天儀禮)는 삼국시대부터 농업의 풍작을 기원하거나 기우제를 국가적으로 거행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제도화된 원구제(圜丘祭)는,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고려 성종(成宗:재위 981∼997) 때부터라고 전해진다. 조선 초기에는 제천의례를 억제함으로써 세조(世祖:재위 1455∼1468) 때 원구제가 폐지되었다가 조선을 대한제국이라 하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여 천자가 제천의식(祭天儀式)을 봉행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원구단이 다시 설치되었다.

지금의 원구단은 1897년(고종 34) 고종의 황제 즉위식과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옛 남별궁(南別宮) 터에 원단을 만들어 조성한 단지이다. 그뒤 단지 내에는 화강암으로 된 기단 위에 3층 8각 지붕의 황궁우(皇穹宇)를 1899년에 축조하고 신위판(神位版)을 봉안(奉安)하였으며,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석고단(돌북)을 황궁우 옆에 세웠다. 악기인 듯한 석고(石鼓)의 몸체에 부각된 용무늬는 조선 말기 조각의 걸작으로 꼽힌다.

처음 조성된 단지는, 1913년 일제에 의해 원구단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다음해 조선호텔이 들어서면서 축소되었으며, 지금은 황궁우와 석고, 그리고 3개의 아치가 있는 석조 대문만이 보존되어 조선호텔 경내에 남아 있다.

남별궁 : 태종 때 경정공주(慶貞公主)의 남편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조대림(趙大臨)에게 이 땅을 준 뒤부터 속칭 ‘소공주댁(小公主宅)’이라고 하였는데, 선조 때 의안군(義安君) 성(城)의 신궁이 되면서 남별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593년(선조 26)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이곳에 주둔한 이래 중국 사신이 머물렀다. 1897년(광무 1) 원구단(圓丘壇)을 세웠으나, 1913년 헐고 그 자리에 조선호텔을 세웠다.

자료 출처 : 네이버

우리나라의 원구단(환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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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천단
"천단"은 북경에서 "천안문", "자금성"과 더불어 꼭 둘러보아야 할 코스이다. 면적이 273㎢로 북경 옛 성부분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한 규모의 제사 건축물이다. 199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천단의 주요 명소로는 원구단, 황궁우, 기년전이 있다.

[원구단]
원구단은 바깥쪽 4각, 안쪽 둥근 2중으로 둘러싸인 3층의 원형 대리석 단이다. 공원 남천문(南天門) 입구 근처에 있으며, 매년 동지에 황제가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여름의 기우제도 여기서 행하여졌다. 원구단에서 보면 멀리 황궁우의 푸른 지붕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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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우皇穹宇]
명 가정(嘉靖) 황제 시대에 세워지고, 청의 건륭황제 시대에 재건되었다. 황궁우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담으로 속이 비어 있는 것이 회음벽(回音壁)이며, 황궁우 앞의 상석이 삼음석(三音石)이다. 회음벽은 담을 향하여 소리를 내면 반대쪽의 담에 선 사람에게 들린다고 하는 벽이다. 또한 삼음석은 상석이 여러 개 나란히 서 있지만 북쪽에서 세번째까지를 지칭한다. 돌 위에서 손뼉을 한 번 치면, 첫 번째 돌에서는 1회, 두 번째 돌에서는 2회, 세 번째 돌에서는 3회 반향음이 되돌아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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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년전祈年殿]
높이 38m, 직경 30m의 3층 원형 기단 위에 나무만으로 둥그런 우산을 편 듯 지어진 3층 지붕의 원형 건물이다. 이곳에서 황제는 오곡풍년의 제례를 행하였다.
기년전의 3층 지붕 기와는 유약을 칠한 유리 기와라 불리고 있는데, 기와 빛깔은 검정이 섞인 듯한 푸른빛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  유리기와가 현재와 같은 빛깔이 된 것은 청의 건륭황제 시대이고, 그 이전에는 위에서부터 파랑, 노랑, 자주의 3가지 빛깔이었다고 한다.
기년전의 건물은 대들보나 마룻대를 사용하지 않은 중국의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건물 밖에는 붉은색의 뚜껑을 가진 기둥이 있고, 그 기둥 주위에 12개씩의 원주가 2중으로 둘러싸여 있다. 4개의 기둥에는 꽃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4계절을 나타낸다고 한다. 안쪽의 12개는 1년의 12개월, 바깥쪽의 것은 12간지를 나타내고 있으며, 내외합계 24개의 지붕기둥은 24절기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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