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2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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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회암사지檜巖寺址
-조선의 어린 명종과 수렴청정하던 문정왕후, '지식인 처형의 시대', 나라는 굶어도 불사는 일으키겠다! -문정왕후는 구중궁궐의 한 과부요, 명종은 고아에 지나지 않는다(남명 조식의 단성소丹城疏에서) -문정왕후와 한 시대를 풍미한 회암사! 권력의 칼날이 무디어질 때 회암사 역시 폐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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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암사
▼ 회암사지 복원도
▼ 회암사지
천보산에 올라서면 불국토의 낙원을 볼 수 있다. 지공·나옹·무학의 법문을 마주하면서 저 멀리 조선왕조의 정치 현장인 한성을 굽어볼 수 있다.
고려시대 때 대사찰로 알려진 회암사, 이제는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 덩그러이 터만 남아 있다.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우리들에게 다가 선 것은 폐허 속에서 찾아 낸 진귀한 보석이었다.
회암사檜巖寺는 경기도 양주 천보산天寶山(423m) 자락에 위치해 있다(현재 천보산과 그 능선은 양주와 포천을 가르는 경계이다). 1328년(고려 충숙왕 15년)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指空이 인도의 아라난타사阿羅難陀寺를 본떠 266칸의 대규모 사찰을 창건하였고, 50년 후인 1376년(고려 우왕 2)에 나옹懶翁이 중건하였다. 조선왕조에 들어와 세조비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명으로 정현조鄭顯祖가 재중창하였는데, 명조 때 보우普雨가 실각한 후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9세기 초에는 거의 폐허가 되었다.
회암사 절터는 천보산 남쪽 기슭 경사진 대지에 있다. 발굴 조사 결과, 회암사는 계단상으로 8단의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여러 건물을 세웠던 흔적만 남아 있었다. 회암사 절터에서 천보산 방향의 북쪽 구릉 능선으로 1km 정도 올라가면 현재의 회암사가 있다. 회암사 좌우측 구릉 능선에 보물로 지정된 지공·나옹·무학의 3화상和尙의 유물이 있다. 좌측 능선에는 선각왕사비禪覺王師碑(보물 387)가 있고, 우측 능선에는 무학의 부도(보물 388) 및 비碑, 쌍사자석등(보물 389), 지공의 부도 및 석등, 그리고 나옹의 부도 및 석등이 있다.
◈ 찾아가는 길
1호선(경원선) 덕정역에서 동쪽으로 약 4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1번 출구에서 회천3동 주공삼거리, 서재말교차로, 율정삼거리를 지나 회암사지로 들어선다.
◈ 회암사 주변 전경
천보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방향이다. 멀리 수락산과 도봉산이 보인다.
회암사 좌우 능선이 보인다. 좌측 능선 빈 공터에는 위쪽부터 나옹·지공·무학의 3화상和尙의 부도 및 석등이 나란히 위치해 있다. 우측 능선에 조그마한 하얀 탑은 나옹의 선각왕사비이며, 그 아래쪽 첨탑 좌측 빈 공터가 회암사지이다.
천보산 정상에서 칠봉산을 바라본 전경이다.
◈ 회암사 유적
▼ 회암사지
천보산과 칠봉산(506m)이 보인다. 천보산 너머에는 동두천 해룡산(661m)과 포천의 왕방산(757m)이 있다.
▼ 현재의 회암사
회암사다. 회암사 뒤로 천보산 정상이 보인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측의 능선에는 보물 제387호로 지정된 나옹대사의 회암사지선각왕사비가 있고, 우측의 능선에는 지공·나옹·무학의 부도탑과 비석이 있다. 능선 위쪽부터 나옹·지공·무학 화상의 순이다.
① 나옹대사 선각왕사비(보물 제387호)
1377년에 건립되었으며, 비문은 이색이 짓고, 글씨는 권중화가 예서로 썼다고 한다. 높이 306cm, 너비 160cm이다. 비문에 따르면, 선각禪覺은 고려말의 유명한 승려로 휘는 혜근, 호는 나옹, 초명은 원혜였다. 1320년(고려 충숙왕 7년)에 태어나 1377년(고려 우왕 3년)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했다고 한다.
☞ 신륵사
이 비의 형식은 중국 당나라 형식을 따르고 있다 한다. 귀부龜趺는 매우 간략한 기법으로 조각되어 약간 추상적으로 보이며, 이수螭首는 별도의 석재로 따로 만들지 않았다. 비신碑身의 상단에는 '선각왕사지비禪覺王師之碑''라는 제액題額(제목 글)을 중심으로 쌍두룡(2마리의 용 머리)을 조각했는데 매우 정밀하고 화려하다.
② 무학대사 부도 및 석등
나옹의 제자인 무학대사의 유물이다. 앞쪽부터 묘비(무학대사 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 석등(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 앞 쌍사자 석등, 보물 제389호), 묘탑(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 보물 제388호)이 있다.
보물 제388호로 지정된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과 보물 제389호로 지정된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 앞 쌍사자 석등'이다. 무학대사(1327~1405)는 조선 태조의 왕사였다.
부도는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모신 탑 무덤(묘탑)이다. 부처의 사리를 모신 탑은 경배의 대상이 되나, 부도는 예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보통 절 외곽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9세기경 통일신라 시대 이후에 선종의 발달과 함께 고승 신앙의 한 형태로 부도가 크게 발달했다.
석등은 지대석과 하대석이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묘비는 1410년(조선 태종 10년)에 건립되었다. 태종의 명을 받들어 변계량이 비문을 짓고, 공부의 글씨로 비문을 새겼다 한다.
③ 지공선사 부도 및 석등
회암사는 고려 말 조선 초에 선종의 맥을 형성했던 승려 지공, 나옹, 무학이 머물려 포교했던 유명한 절이다. 지공선사 부도 및 석등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단에 무학대사 묘탑이 보인다.
지공선사 묘비에서 바라본 나옹선사의 부도와 석등(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이다.
◈ 회암사지의 기타 유적 보기
회암사 절터 내의 부도와 맷돌, 그리고 현재 회암사 우측 능선에 있는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면 된다. ☞ 회암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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